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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자살, 교육의 정상화가 해답이다
임 현 진(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최근 KAIST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은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일류대라고 하는 대학들에서 적지 않는 학생들이 해마다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적 현실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요즘 대학생들은 괴롭다. 대학에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을 위해 학점과 스펙은 물론이요 그 이상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선후배들 만나 서로 배우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SNS가 발달해 있는 TGIF(Twitter, Google, Internet, Facebook) 환경아래 대면적 접촉과 소통을 줄어들고, 필요하면 접속할 뿐 서로의 정의적(情誼的) 관계는 끊어지고 있다. SNS가 오히려 소외, 다시 말하면 동료들과의 대화와 토론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얼굴 맞댄 소통과 대화가 부족해

우리나라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각종 사고에 의한 사망자 수는 감소했지만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는 오히려 증가해 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우리나라 5세 이상 인구 10만 명당 32.5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하루 평균 35명이 자살한 셈이다. 이는 OECD 평균 14.5명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는 까닭이다. 한국이 제아무리 압축발전을 성공적으로 해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는 행복한 나라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의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중에서 1위가 바로 자살이다. 실제로 청소년 5명중 1명꼴로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성인보다 높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예를 들어, 12-18세 구간의 청소년들의 자살생각률이 18.5%에 달해 성인 평균 15% 보다 높다. 이들 중 지난 5년간 고교생이 가장 많이 자살을 선택했고 그 다음이 중학생 그리고 초등학생 순서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의 원인을 살펴볼 때 이른바 ‘이스털린효과’(Easterlin effect)를 고려할 수 있다. 사회 구조가 빨리 변화하고 복잡해지다보니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안녕이 흔들리게 된다. 자원은 모자라고 용력은 늘어나지 않다보니 사회적 경쟁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문제는 출생기간이 같은 어떤 성원들의 숫자가 많은 경우 다른 출생기간의 성원들보다 사회적 경쟁에 더 휘말림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물질주의적 가치가 팽배하는 가운데 사회적 열망에 비해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 사이의 격차로 인해 결국 좌절감을 가짐으로써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지나친 입시경쟁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학교로부터 충분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가정문제, 성적비관, 이성관계, 신체결함 등으로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입시 제도를 학력 이전에 인성을 중시하는 틀로 바꾸어 청소년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세계 36개 나라들의 청소년들의 행태에 대한 비교연구에 의하면 한국 젊은이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에서 꼴찌라 한다. 학업성취를 위한 교육방식에 충실하다보니 시험에는 강할 수 있지만 사회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초·중·고등을 통해 대학으로 이어지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다양한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인성중심의 교육을 통해 보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응력과 관계능력을 키울 겨를이 없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나친 대입경쟁과 과열로 인해 초·중등 교육 과정이 지식과 인격의 함양을 위한 어린이들의 훈육과 학습 과정을 왜곡하고 변질시키고 있다. 특히 대학에 들어가면 수월성과 경쟁력이라는 이름아래, 젊은이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와의 관계아래 세상을 살아가는 ‘관계능력’을 키울 겨를이 없다.

악명 높은 ‘징벌적 수업료제’ 아래 다른 대학보다 일찍 대학에 들어가는 KAIST의 순진하고 어린 학생들이 좌절감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지저분한 제도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성적이 처지는 학생들의 개인교사라 할 수 있는 ‘튜터제’를 통해 보듬어 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대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교육의 철학과 방법도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수월성과 경쟁력이라는 미명아래 젊은이들을 코너로 몰아세우는 이 나라의 교육현실이 안타깝다.

실존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죽음은 절망에서 연유한다고 본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인간이 자신이 절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한다.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알고 이를 실존으로 마주할 때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절망하기 이전에 소진(消盡)되고 있다. 미래 한국을 위한 교육 개혁과 제도쇄신을 위해 가정과 학교, 아울러 정부와 사회가 모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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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현진
· 서울대 사회학과교수
· 한국정치사회학회 회장
· 아시아연구소 소장
· 저서 : <한국의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북한의 체제전환과 사회정책의 과제>
          <21세기 통일한국을 위한 모색> 등

관리자  kotr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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