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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을 만나다!완주군 이서면 이용녀 할머니의 이야기

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란다.

완두콩은 귀농귀촌인, 마을사무장, 초보엄마, 전직 언론인, 지역을 고민하는 젊은 단편영화 감독까지 다양한 지역주민이 함께 모여 이웃들의 작은 소식, 지역공동체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골매거진으로 그래서 꽃도, 강아지도, 마을도 모두 완두콩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또한 지역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며,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주민과 행정의 거리를 좁혀 참된 의미의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노력을 한단다.

할머니들이 갓 한글을 배우고 써내려간 맞춤법도 틀리고 문맥도 맞지 않는 글!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담담한 삶도 거칠고 투박하지만, 완두콩은 완주 사는 스물한 명의 할매들의 인생과 글을 할미그라피에 오롯이 담아 2016년 12월 24일 태어나도록 했단다.

우연한 기회에 할미그라피를 보게되고, 널리 소개하고픈 욕심에 다짜고짜 이용규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냐하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로 무단으로 전제와 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상의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이용규 대표님이 흔쾌히 허락하시고, 원고 pdf파일까지 제공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면서... 

스물한 명 할매들의 인생 이야기를 한분 한분 소개해보려 한다.

 

그 첫번째로 완주군 이서면 이용녀 할머니의 이야기 속으로...

 

나는

당신께

고마쓰니다

 

   완주군 이서면 이용녀 할머니

 

할머니의 고향은 황해도. 열한 살 나이에 남한으로 피난 와서 칠십 평생을 정농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서 혁신도시의 원도심격인 정농마을은 이북에서 온 어르신들이 일군 마을이다. 생존의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부지런함이 몸에 밴 마을사람들은 거르지 않고 꾸준히 일을 했고 덕분에 부농이 많은 동네로 소문이 났다.

한글 교실이 열리는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와서 수업 준비를 하는 이용녀 할머니. 뾰족하게 깎은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공책과 교재를 책상을 대신한 밥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으신다.

 

여그 오기 전 어릴 때 이북 고향에서 베 짜면서 생활했어. 하루는 집 구들장 밑에 굴을 파고 아버지가 거기 들어가 있었어. 외할머니는 베틀 속에 들어가 앉았고. 나는 이불 속에서 들석들석하고 있었는디 새벽에 군인들이 들어온 거야 집에. 그래갖고 우리 엄마한테 남편 어디 갔냐고 물어보는거야. 그래서 엄마가 모른다고 했어. 옛날에 우리 고향 문턱이 이만치 높았거든. 나랑 우리 할머니랑 방에가 앉잤는데 군인이 나한테 총을 대고 물어보는 거야. 아부지 어디 갔냐고. 그래서 나도 모른다고 했지. 그러고 얼마간 있다 집 앞에서 막 총소리가 나. 그 때 말하자면 이북 군인하고 남한 군인하고 양쪽에서 막 총을 쏘는 거야. 그러더니 남한 군인이 우리 동네 와서 빨리 피난가라고 하는 거야. 그 길로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쫓아 나왔어.

곰련이라고. 곰련섬으로 갔어. 가가지고 그 때 갯물이 빠졌다 들어갔다혀. 이만치 물이 차는데 애들은 쪼끄만 배를 가 타라고 해서 건너 주더라고. 나는 그래서 배를 타고 건너오고 엄마는 그냥 막 걸어 들어오고. 넘어가니까 섬이 골짝 골짝에가 많어. 그래서 거그서 인자 움막을 치고 다 살은 거야. 이게 갯바닥이라고 하면 여그 바로 옆은 이북인게 거그 살면서 저녁을 먹고 있으면 총알이 뿅 하고 날아다녀. 어릴 때 너무 무섭대서 이남 오기 전에는 잠만 들면 그 꿈꾸고. 나 시집가서도 그 꿈을 자주 꿨어. 그런 꿈만 꿨다니까. 너무 무서워서. 내가 글씨만 잘 쓰면 이것을 다 편지로 쓸 것인디. 글을 못씨가지고...

손에 쥔 연필을 놓지 않으시는 할머니. 끝이 뭉툭해진 연필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공책 위를 지나간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피란 와 고생도 많이 했는데

여보 나는 당신에게 너무 고마씁니다

공부 하려 학당에 가려하는데

당신 혼자 밥을 잡수는데

당신은 어서 가라고

내가 설거지 할테니 어서가

그러더라고.

 

용녀 할머니의 뒤에선 한글교실 어르신들이 부르시는 노래 고향의 봄이 들려온다.

 

영감이 가지 말라면 못 가잖여. 근데 보내주니 고맙지. 남편은 여그 와서 살면서 동네에서 만났어. 그때는 연애도 몰라. 그때는 열아홉살 먹었는데 중매쟁이가 맺어 준 거야. 그래서 결혼했지. 연애도 없어 그때는. 남편도 황해도 사람인디 송화라고 그랬나. 암튼 참 다정혀. 내가 좀 뚝뚝하지. 잘혀. 지금은 자슥들 다 여의고 우리 둘이 사는디 그저 건강만 했으면 좋것써. 지금 그러고 살아.

할머니가 쓰신 편지는 한글교실에 오는 날이면 본인(할아버지) 끼니는 걱정 말고 잘 갔다 오라며 마중해주는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글이다.

 

/자료제공=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

주소 : (565-864) 완주군 고산면 고산천로 854-7

전화 : 063-291-8488

팩스 : 063-261-8448

이메일 : toktok1942@hanmail.net

홈페이지 : http://www.wandookong.kr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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