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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고산면 인금순 할머니
여름은 그저 무덥고 습한 게절로만 알았다. 하지만 인금순 할머니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편지 속 여름은 ‘따뜻’ 했다.
어머니께
따뜻한 여름이 오니 어머님
생각이 나요 선풍기도 없는
세상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 저는 어머니가
막내딸로 낳아주셔서 좋은
세상에서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도 있고 한글 배우며
좋은 세상에서 75세까지
살고 있습니다.
인금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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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내기 바쁜 시골집 흔한 파리도 인금순 할머니를 만나면 서울에서 온 ‘손님’ 대접을 받는다.
파리 이야기
오늘은 밭을 매는데
파리 한 마리가 와서 나를 귀찮게 하네
그래서 쫓으면서 어디서 와서 귀찮게 하니?
그랬더니 파리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서울에서 사람버스 타고 왔어요
시골에 왔더니 아주머니 땀냄새가 좋아요
아주머니는 무얼 좋아하세요?
응 나는 세상에서 한글이 제일 좋아요 그리고
노래도 좋아하지요 너는 노래 좋아하니?
아니요 파리는 노래 못해요
그래 모기는 해가 가면 와서 노래를 잘하는데
그러면 나는 좋아서
내가 내 뺨을 땅땅치며 장단 맞춰 치지요
그러면 모기는 소리 내고 달아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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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도 생각이 나면 일어나 시를 쓴다는 할머니는 자신만의 따뜻한 시선을 글로 풀어낼 줄 아는 영락없는 시인이다. 마당 한 켠 돌담을 쌓아놓고 고구마순을 에쁘게 가꾼 할머니. “잘 자라니 그저 고맙고 예쁘지요”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뭐시고 다 좋아요. 꽃도 좋아하고, 짐승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웃음)”
자슥들 다 여우고 뭐시고 취미생활을 해야것다 하던 차에 저 아래서 한 각시가 나헌테 심심헌게 자기랑 풍물이나 배우자고, 자기가 실어갈텡게 돈 안 받고 가리켜준다 그래서 그러자 했지. 그래서 풍물교실을 갔는디 다 젊은 사람들잉게 책을 놓고 배우는데 나는 글을 몰른게. 천상 귀로만 덩더쿵덕 두들기는 소리만 듣고 배웠어. 그래서 내가 거그 여자 면장님헌티 한글 종 배울 수 없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면장님이 좋은 질문 하셨다고. 나보고 한글 배울 사람들을 한번 짜보랴. 그래서 우리 동네는 다섯 명이 배우고 그냥 그때부터 면장님이 서둘러서 여기저기 서 붙이고 물어봐갖고 한 달쯤 된게 연락이 와서 한 사십 명 오고, 며칠 있응게 이십 명 또 며칠뒤에 한 이십 명 오더니 백 명이 넘게 되네. 그렇게 시작해서 한글 배운게 벌서 9년채야.
그렇게 차곡차곡 배운 한글로 군수님 앞에서 내가 직접 쓴 시도 읽어보고, 상도타고, 이렇게 손님이 찾아와서 내 글씨도 보러 와주고 헌게 나는 그냥 신이 나서 손벽을 짝짝 치고 이렇게 덩실덩실 춤이 절로 쳐져(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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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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