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가
그렇게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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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운주면 이예순 할머니
운주면 안심마을에 사는 이예순(78) 할머니, 생애 반세기를 서울에서보내고 15년전, 운주로 내려왔다. 본래 고향은 충남 연산, 고향 근처에 물길을 찾다 고개 넘어있는 완주에 오게 되었고 안심이라는 마을 이름이 좋아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야트막한 지붕들이 한가롭게 모인 풍경 뒤로 대둔산 자락이 황홀하게 펼쳐지는 곳,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안심사로 향하는 길목 하얗게 빛나는 집 한 채가 보인다. 이예순 할머니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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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남편)가 그래요. 당신은 그 전에 공부했으면 참 훌륭한 사람이 됐을 거야. 우리 막내딸이 지금 마흔여덟인데 우리 딸도 공부하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대, 싫지가 않고. 밤을 새드락 해도 재밌대. 책 읽고 그러는게. 엄마 탁했는지 내가 걔를 탁했는지 모르겠는데(웃음)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한글교실에 다니게 된건 아니었어요. 여기 와서 소일거리를 찾다가 꾸준히 뭔가를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안 그럼 맨날 집에 혼자 늘어져 있으니까. 그러다가 한글교실이 있다고 해서 다니게 됐는데 참 좋아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다음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고, 처음 완주에 왔을 땐 들뜬 느낌이 있었어요, 이방인처럼. 근데 이제는 여기에 있어야 안정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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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지 않은 세간, 가지런히 정돈된 내부. 오래됐지만 낡은 흔적 없이 말끔한 자전칠기 찬장과 골드스타라는 옛 상호가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 선풍기는 여전히 힘찬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할머니의 차분하고 꼼꼼한 솜씨를 집안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손에 들어오면 뭐든 “깨끗하게 썻다” 그 말은 꼭 한 번씩들 해요.(웃음)
우리는 농사는 지을 줄 몰라서 양봉이랑 뒤에 들깨랑 수수, 콩 조금씩 해요. 근데 아이고 물이 없어서 바싹타요, 지금. 가물어서 깨는 물이 없어. 인제 심어서 자랄건데 자라는 과정에서 물이 없는 거야. 워낙에 가물어서 다 타는거야. 다 먹을 걸 못 먹어요. 지금 옥수수 나와서 한참 쪄먹을 텐데 지금 말라서 안 나와. 콩도 타서 물주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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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 밭에 나간 할아버지를 위한 점심을 준비하는 이예순 할머니. 할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주방 창가뒤로 붉에 익은 수수가 한들한들 나부낀다.
주방에 난 창에서 보면 수수가 그렇게 예뻐요. 주인을 닮아서 키만 훌쩍 컸는지. 그냥 안 먹어도 보기만 해도 참 예뻐요. 내가 몸이 좀 불편한데 그러고 난 이 후로 우리집 아저씨가 참 다정해졌어. 그 전에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좀 헤펐지. (웃음) 내가 한글교실 다니고 난 뒤로는 짓궂게 나를 두고 ‘완창리 대학생’이라고 놀려, 아저씨가. 학당 가면 대학교 가냐고 그럼서도 학당 갈 때, 올 때 오토바이로 데리러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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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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