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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의 인생손글씨/할미그라피-11> 어릴 때 소원이던 공부를 한다완주군 구이면 이양임 할머니

어릴 때 

소원이던 

공부를 한다

 

완주군 구이면 이양임 할머니

 

옛날에 전주 평화동 근처에서 그럭저럭 살았지. 근디 일본놈들이 와갓고 그냥 다 풍비박산 났어. 말 안 들으면 당꼬바지 입은 일본 순사가 뒤꼭지에다가 총구 겨눴다니까.

6.25땐 짚타래 속에 숨어서 안 잡혀 갔어. 그땐 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핵교를 못 갔거든. 핵교 다니는 애들은 옥수수가루하고 분유랑 배급 받아서 먹고 그랬는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드만. 우리는 그렇게 없승게 아무것도 못 먹고 맨날 칡뿌리 캐서 먹고, 메뚜기 잡아 먹고 그랬당게.

열아홉 살 때 시집가서 육남매를 낳았지. 글고 스물세 살 정월 때부터 장사를 다녔어. 옷, 멸치, 생선, 젓갈, 이불, 항아리까지 돈이 된다면 안 판 것 없이 다 팔고 다녔어. 어떤 때는 비얌도 잡아갓고 팔았다니까.

하도 열심히 하니까 옛날 서울 남대문 큰 상회 주인이 전주에 가게를 내준다고 하는데 그냥 못한다고 그랬어. 글을 모릉게 장부도 못쓰고, 뭐가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남아 있는 게 뭔지 쓰들 못허잖어. 긍게 하루치 떼어다가 파는 보따리 장사밖에 할 수가 없었지.

옛날에 전주 야구장에서 경기 있으면 옥수수, 감자, 계란 쩌다가 팔고 그랬어. 그래도 일하면서 숫자를 쓰들 못하지만 내가 암산 하나는 지금도 기가 맥혀.

내가 여태껏 살아봉게 글 모르는 것 가치 서러운 것은 없어. 하도 관절이 아파서 처음으로 전주 큰 병원에 갔는디 간호사가 종이 쪽데기를 줌서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쓰래. 근디 못쓰고 머뭇거링게 미안하드라고.

또 내가 지금 동네 부녀회 총무를 보는디 아직도 혼자 은행을 못 가. 전표를 읽들 못항게 숫자 하나 잘 못써서 돈 잘 못 붙이면 큰일 나자녀. 옛날에도 은행은 못가고 그 날 번 돈은 그냥 장판 아래에 넣어놨어.

한글교실은 올해로 3년째여. 얼매나 조은지 몰라. 에이, 비, 씨 영어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애들처럼 색칠 공부도 허고 조아. 여름날에는 아들한티 편지 쓴 걸 가져다가 선생님이 어디 대회에 갖다 줬나봐 그랬더니 나중에 상장하고, 상품하고 주드라고, 너무 조아서 그날 아들, 딸 다 불러서 잔치하고 그랬어.

만날가치 줘도 잊어 버링게 아쉬워. 못 다한 공부 땜에 저승에도 못 갈 것 같혀.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근디 사람이 자꾸 쭐어싸서 걱정이네. 선생님은 갈치는 데까지 갈처본다고 하는디. 이 마을에도 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존심이 있어가꼬 안 나와. 가치 배우면 조켔구만.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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