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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코로나19 사태와 이단교회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계통 이단이 많다. 복음을 떠나 몸집만 키우려 했던 한국 교회와 과도한 도시화로 소속감을 잃은 사람들이 그 성장의 토양이 되었다. 밤 새워 술 마시는 것이 생활의 비타민 같이 되면서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에 실망하고 정에 굶주려 방황하는 영혼들이 이단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이단은 도마 위에 오를 때가 되었다. 가출 청소년을 앵벌이 시킨다고 칭찬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단의 교리는 명쾌하다. 어렵고 애매한 성경을 꼭 집어 설명하는 듯 해서 교회를 좀 나가 본 사람들이 끌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이나 신약의 주님이나 다 인격적이다. 각 사람은 성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로 찍어 내 듯이 획일적으로 짓지도 않았고 그렇게 교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속 썩이는 애들이라도 스스로 자라서 깨달을 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 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신다. 하나님에겐 각 사람이 모두 귀하고 특별한 존재이다.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이 신앙생활이다. 

성경은 쪽집게 학원처럼 가르칠 과목이 아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진리를 바라보는 인간은 불안전하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단 교주들은 거기서부터 걸린다. 하나님의 영역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단은 종류가 많아도 대개 독창적이지도 않다. 각 이단들 교리와 문화가 뒤섞여 겨우 재구성되는 수준이다. 

삼위일체(trinity)를 제대로 인정하는 이단교회는 없다. 주님은 성자의 하나님이며 각자의 마음에 오시는 성령까지 성신의 하나님이니 그 교리를 부정하지 않으면 신격화되고 싶은 이단교주의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각 사람에게 와서 하나님의 뜻을 실수 없이 알려 주신다. 그러니 성령보다 더 능력 있고 친절한 목회자는 있을 수 없다. 

삼위일체만 잘 이해 해도 신도들은 '인간'에게 현혹되지 않고 진리가 주는 자유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독재자들이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다고 말하 듯이 사이비교주들은 삼위일체를 헐뜯는다. 

이단의 주요 메뉴는 '성령'과 '요한계시록' 같은 '신비주의적' 영역이다. 삼위일체설의 관점에서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이다. 분명한 인격적 하나님인데 이단 교주들은 스스로를 재림예수나 보혜사라고 하니 '하나님'이라고 참칭하는 것이다. 

대개 이단은 신도들의 자율성을 제한하면서 한편으로 행위를 강조한다. 기존 교단을 공격하는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결말은 교단으로 신도들의 재산을 끌어 들이는 것이다. 다단계금융회사는 약정한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사이비종교는 '받으면 은혜요 못 받아도 기쁘게' 생각하도록 세뇌시키고 최면도 건다. 탄력만 붙으면 거액의 재물을 모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에 새로운 이단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단은 조직적이다. 기존 교회같은 느슨한 분위기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사람들은 눈물나게 감동할 수도 있지만 포근한 환대가 '힘'으로 변하면 개인이 저항할 수 없다. 이단교단이 주는 조직의 '포근함'은 조폭집단에 들어 가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잘 나가는 이단교회는 조직의 운영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신도관리가 매우 치밀하고 체계적이다. 일반 교회에서는 꿈도 못 꿀 강도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결국 효율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비용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투입'과 '산출'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종교조직이다. 

교회는 생산조직이 아니므로 신도들이 나가서 벌어 줘야 한다. 교회활동이 활발할 수록 돈은 더 필요하고 그 만큼 신도들의 부담이 늘어나니 일반 교회는 자중할 수 밖에 없다. 신도들의 사생활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사이비교단은 조직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화려해 보여야 하니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해결방안은 무한팽창이다. 다단계는 성장하는 동안엔 문제가 가려진다. 국내 시장이 좁으면 해외로 나가서라도 신도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 

비효율적인 고비용구조라서 성장하지 못 하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이런 비효율적 비용구조는 구성원들의 희생을 가져 온다. 당장은 '든든해' 보이는 교단을 믿고 헌신하겠지만 세월이 가면 불안해졌다가 결국 빨리 종말이 오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이단은 세속 권력을 매수하려 한다. 이단교회의 본질은 반사회적이기도 하지만 조직 보호를 위해서도 매우 폭력적이다. 그런 폭력성을 만들내고 실행하자면 소수의 충성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히틀러는 나찌 친위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독일 국민 전체를 꼼짝 못하게 전쟁에 끌어들였다. 명치유신으로 권력을 잡은 일본 군부도 그랬다. 

이단교단들이 권력을 매수하려 했던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권력은 매수되는 순간 꼼짝 못 하고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속성도 있다. 권력이 이단의 불법과 온갖 반사회적 행위가 권력를 받게 되면 신도들은 독안에 든 쥐의 신세다. 

이단들은 일반 교회를 먹잇감으로 보고 요인들을 보내 교인들을 빼내고 심지어 일반 신도로 위장시켜 교회 내부에서 암약하게 한다.쉬운 말로 '간첩'이다. 이적 행위를 하는 스파이를 용납하는 나라는 없다. 기업들도 산업스파이를 막기 위해 철통같은 보안을 하고 있다. 

사이비종교일 수록 교단의 운영은 신격화된 카리스마에 의존한다. 신격화(神格化)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오류의 능력을 가졌다고 믿게하는 것이다. '神界'에 어울릴 것 같은 교주가 세상에 있으면 실수가 많다. 그럴 수록 맹신이 강요된다. 

이단의 뿌리는 초기 기독교가 신학으로 자리 잡을 때부터 생겼을 만큼 뿌리가 깊다. 우리나라 이단들도 수십년의 세월을 통해 만들어져 온 시스템이니 만만하게 볼 대상은 아니다. 신도들도 이미 삶의 터전이 되었다면 목숨 걸고 지키려 할 것이다. 건전한 조직이라도 이성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듯이 통제되지 않는 교주의 생각이 사회를 어처구니 없는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대부분의 이단은 무리한 성장을 멈출 수 없는 조직이다. 패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질 수 밖에 없는 불안정한 생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는 바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나만 잘 살겠다는 무관심이 몰고 올 폐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밤 늦게 술 마시는 손님이 줄어든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돈만 쫓는 물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단은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더 건전해져야 한다.

백태윤 선임기자  pacific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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