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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21대 4.15 총선은 한ㆍ일 전이다?

 

한반도는 고대부터 일본의 침략에 시달렸던 땅이다. 오죽하면 신라 문무왕이 수중묘를 원했을까? 박제상은 일본에 인질로 잡혀 간 눌지왕의 아들을 구출하러 갔다가 결국 처형되며 돌아 오지 못했다. 전국 어디에도 왜구들의 침탈을 당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 민족은 일본에 의해 많은 피해를 당하며 살았다.

요즘 들어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을 추월할 거라는 전망이 많이 나온다. 그 원인 중의 한 가지는 우리의 정치문화가 일본보다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의 가치는 일본 소니와 도요타 두 회사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본에 대한 기술 및 부품의 의존도도 커서 해마다 수백억 달러의 대일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공급이 끊길까 봐 최근까지도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어느 듯 주요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하게 되면서 이젠 일본 경제를 걱정하게 될 정도로 입장이 역전되었다. 이렇게 일본을 추월하게 된 배경엔 합리성과 효율성 위주로 경제체질이 바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국민은 매우 실용적이며 유연하다. 현실적 필요성에 맞춰 버릴 건 버리고 필요한 건 즉시 만들거나 수용한다. 종교나 관념, 전통 같은 부차적인 이슈에 얽매이지 않으니 창의력과 순발력은 전 세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났다.

민간부문이 역동적인 만큼 행정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다. 그 또한 정치적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산업의 유연성은 진보정권 시절에 극대화되었다. 중후장대형 산업만 밀어 부쳤던 권위주의 정부로부터 적기에 정권교체를 이루고 경박단소형 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루어내는 저력을 보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가 주도하는 독점자본주의의 질서하에 경제가 급성장했다. 종전 이후에도 이렇다 할 정치질서의 변화 없이 우파 주도하에 경제가 발전해 왔지만 그러는 동안 변화와 혁신의 내부 동력은 소멸되고 말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경제개발 모델은 우익 헤게모니를 고정시킨 국가주도형 독점경제였다. 일본식 경제구조를 복제한 것이니 일본 경제가 잘 나갈 때는 통할 수 있었겠지만 미ㆍ일 무역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방향감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나라가 자국경제의 하청구조로 남아 있길 원한다. 미ㆍ중이 주도하는 G2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한국의 협력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보수 야당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정희 독재의 일본식 경제성장 모델이라는 낡은 유산에만 의존하고 있으니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국민의 이성을 마비시켜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우한에서 발생했던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우한폐렴이라 부르며 한ㆍ일 보수진영은 공조관계를 구축하여 문재인 정권을 협공했다. 야당은 경제실패라고 몰아 부치고 있고 일본 아베정권은 신냉전질서의 복원을 위해 대한(對韓) 금수조치까지 발동하며 야당과 보조를 맞췄다.

우리는 일본과 불필요하게 대립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일본에 비굴하게 굽히고 들어갈 필요도 없어졌다. 야당은 일본의 우월성이 뇌에 각인된 노년층을 파고 들고 있다. 일본과 척 지면 우리 경제는 위기에 빠진다는 공포심을 조장한다. 반면 젊은 사람들의 시각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넓어졌다. 그들은 일본의 전통적 제조기술에 대한 관심도 없다. 

부가가치가 높은 IT기술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에 와 있다. 국제적 협력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쾌쾌 묵은 사고에 빠져 있는 일본은 그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메이지유신과 박정희의 시월유신 후예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북아에서 냉전질서를 고착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 보수의 본질과 역사성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뿌리는 유교사상이다. 유학은 한족(漢族)이 주변 이민족(異民族)을 통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왕권'이라는 지배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논리로 시작되었지만 한족의 헤게모니를 정당화 하는 복잡한 학문적 체계로 발전했다. '사대주의'는 한족판 국제정치학의 하일라이트인 셈이다. 

조선 사대부들은 12세기 한족의 최약체였던 송대(宋代)의 성리학만 유학의 정통으로 인정했다. 청나라 사신들이 와서 조선 유학자들이 500년도 더 된 주자만 파고 있는 것을 보고 까무러쳤을 정도로 조선의 보수는 외골수였다. 조선 사대부에게 성리학을 버린 청은 먼 나라였다.

사대주의자들은 대국 중국을 섬기는 대신 조선 민중을 지배할 통치권을 보장 받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였다. 자기들이 정리해 놓은 유교에 대해서는 일점 일획도 수정을 허용하지 않았다. 명(明)이 망하고 만주족이 중원을 차지한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유교 경전을 더 파고 들어갔다. 수백년 이상 된 경전에서 그들의 권위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다.

그들의 말과 글의 능력을 신봉한다. '입춘대길'이라고 대문에 써 붙이면 실제로 복이 들어 온다고 믿었다. 이 땅의 유교 후예 보수들의 최고의 가치는 '권위'이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데 모든 것을 건다. 일종의 '셀프 우상화'에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생각은 어떤 영험한 효력이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시키는대로 살아야 할 존재로 취급한다. 길도 자기가 닦았고 다리도 자기가 놓았다. 국민들은 그래서 일 하고 먹고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뇌피셜 중독이다.

자기들이 하는 정책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녹조로 악취가 진동을 해도 4대강 사업은 좋은 거라고 실제로 믿는다. 코로나는 자기의 불 같은 미움을 발산하게 했다면 바이러스가 다 죽었을 거라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일본 아베와도 사고방식이 닮았다.

보수들이 '단순한' 보편적 복지를 싫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눠 줄 때도 칼자루를 쥐고 자기들의 권위에 복종시키고 싶어 한다. 대상을 고르는데 아무리 돈이 들어도 권위는 양보 못한다.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자 처리에도 일본과 생각이 같다. 큰 나라 일본이 깊은 생각으로 한 일이라 국민들이 감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잘 살게 해 준데 감사는 못할 지언정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체화된 신념이다.

보수의 정신적 지주는 일본의 군국주의이다. 식민지교육의 잔재이기도 하고 친일잔재의 미청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해방전후의 시점으로 돌아 가 보자.

1943년11월27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미국 루즈벨트, 영국 처칠과 중국 장개석의 3상(三相)회담이 열렸다. 대일전 승기를 잡으면서 전후 세계질서 재편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첨으로 한국의 독립문제가 선언문에 들어 갔다.

미국이나 영국은 조선을 미개한 종족 정도로 여기고 독립국가로 만들 의도는 없었다. 장개석의 요구 내지는 주장이 강력하지 않았다면 식민지를 잔뜩 들고 있던 다른 두 나라의 동의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개석에게 큰 충격을 준 사람은 윤봉길 의사였다. 중국은 사람 수는 많으나 일본한테 쩔쩔 매고 있을 때 목숨을 걸고 침략군을 응징한 기개에 놀랐던 것이다. 물론 그는 윤봉길 뿐 아니라 상해 임정을 이끈 김구와 독립군의 활약 등에 감동했다고 한다.

장개석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임시정부가 후원하는 독립군이 국토수복전을 벌이기 전에 일본이 항복했다. 미군정은 우리 상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한은 다시 친일파의 세상이 되었다.

장개석을 몰아낸 모택동은 한반도에서 미국과 전쟁을 벌이며 피아간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한국은 독립의 은인이었던 자유중국과 단교까지 하며 등소평의 중공(中共)과 수교했고 우리는 '대만'과 '중국'으로 그들의 호칭을 바꿨다. 당시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일본 극우와 이 땅의 보수는 한반도 민중의 수탈자로서 동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타민족을 지배는 내부의 협력 없이는 어렵다. 아시아의 최변방 일본에게 한반도는 꼭 필요한 대륙진출의 교두보이다. 그것이 안 되면 덩치 큰 중국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우리 보수에게 미국식 민주주의는 사실 입맛에 맞지 않는다. 같은 유교적 권위주의로 변형된 일본식 정치문화가 딱이다. 일본식 일당독재형 내각제를 최고의 모델로 설정해 놓은 듯 하다.

일본도 우리나라에서 극우세력이 집권하길 원한다. 일본이 우리 민주 정부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노골적인 견제를 우리 보수는 '외교참사'라 부른다.

어쨋든 이번 총선은 한일전이다.

백태윤 선임기자  pacific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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