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사(寺)지에서 -
폐사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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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훌쩍 넘나드는 세월이 남긴 흔적들은
텅 비어서,
두루뭉술하게 달아서,
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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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뒤,
푸른 잔디가 무성할 만복사지가 그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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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홀로 남은 석장승, 야단법석 법회를 치뤘을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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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모되고 부서져나간 석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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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에 드신 돌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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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는 마음껏 빈 절터를 날고 나는 김시습이 머물러
'만복사 저포기'를 쓰던 선방은 어느 쪽에 있었을까를 상상해보며 푸른 잔디밭을
걷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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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부터인지 모르지만
지구를 돌고 도는 바람,
사십 몇 억년을 비추고 있는 햇빛과 몇 십억년을 돌고 돌아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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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사람만 애면글면 애쓰다 스치고 또 스쳐가는 게지요.
흰눈 그득 덮인 텅빈 날,
다시 가고 싶은 만복사지.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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