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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재 평택시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장. 뒤에는 최근에 제작한 박문수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
경기도 평택시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농업, 산업, 군사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관광문화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평택시에 소재한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은 지난 10월 29일 통일교육개발연구원과 손잡고 ‘평택으로 떠나는 역사인물 현장탐방’이라는 주제의 첫 팸투어를 실시했다.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인물인 암행어사 박문수, 정도전 선생, 원균장군, 김육선생 등 4인 이었다.
조선시대 하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내려가는 삼남길을 따라 진행된 이번 여행에서는 평택이 의외로 유서깊은 곳이며 많은 역사인물들의 혼과 얼이 서린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동안 평택평야나 미군부대, 평택항과 산업단지 등으로만 알려진 평택시의 무궁무진한 관광문화도시로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 ‘조선시대 공수처’ 암행어사 박문수
암행어사 하면 떠오르는 박문수(朴文秀, 1691~1756)는 영조시대에 활약한 인물로 오늘날로 치면 특검이나 공수처에 해당하는 직책을 주로 맡아 활약했다.
조선시대 상설 사정기관으로는 사헌부가 있었으나 암행어사는 임금의 특명을 받아 특정지역에 잠행하여 활약하는 임무를 맡았다.
박문수는 삼남지방과 함경도 등 변방에 주로 파견돼 가는 곳마다 벼슬아치나 수령들의 부정과 비리를 단죄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했다는 그는 괴팍한 성격이기는 했으나 일처리가 너무나 공정하고 과감해서 누구나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양반 가문의 박문수는 어린 나이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이곳 평택에는 박문수의 외가인 경주 이씨의 집성촌이 있어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었다.
지금도 평택 곳곳에는 경주 이씨들의 능택이 여럿 산재해 있다. 경주 이씨는 조선시대 이항복, 이세필, 이태좌 등을 배출했고, 근세에는 이시영으로 대표되는 유명한 독립운동가 집안이기도 하다.
장승재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장은 “고령 박씨인 어사 박문수는 고령도 아니고 경주도 아니고 이곳 평택에서 나고 자라서 평택의 기를 받은게 확실하다”고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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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봉 정도전의 사당. 현판에는 '유종공종(유학도 으뜸, 나라에 대한 공로는 으뜸)'이라는 고종이 직접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글씨가 써 있다. |
■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
조선을 개창한 주역이었으나 500년 왕조 내내 '최대 역적'으로 불명예를 안은 불운의 사나이가 있다.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바로 그 사람. 그는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서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 등을 기초하고 지금의 서울인 한양의 4대문안 도시계획을 설계하는 등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졌다. 고려 말기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새 왕조를 개창했다고 전해진다.
정도전은 영주나 단양 출생으로 전해지지만 그의 사당은 이곳 평택에 있다. 그 이유는 이방원 등의 왕자의 난 때 희생당한 정도전이 조선시대 내내 ‘역적’으로 오명을 쓰다 조선이 망해갈 무렵 고종 때에 와서야 비로소 사면복권되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1865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조선 건국을 송축한 정도전의 기록을 발견하고 깊이 감명을 받아 1870년(고종7년) 복훈교지(復勳敎旨)를 내려 비로소 그의 모든 과업을 사면하고, 당시 봉화 정씨의 집성촌이 있던 평택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정도전이 삼족을 멸하는 참화를 당할 때 그의 큰 아들 만이 홀로 살아 남아 목숨을 부지했다 한다.
고종은 유종공종(儒宗功宗: 유학도 으뜸이요, 나라에 대한 공도 으뜸이다)라는 최대의 찬사를 적은 사당 현판을 직접 하사해 그의 억울함을 위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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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균 장군의 묘. 전란 당시 유해는 수습할 수 없어 가묘로 조성됐다. 우측 하단에 애마총이 있다. |
■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원균 장군
원균(元均, 1540~1597)은 흔히 동시대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되어 ‘이순신을 모함한 간신’으로 묘사되었으나 임진왜란 일등공신에 오른 충신이라는게 이 곳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선조의 무리한 명령을 거부한 이순신을 대신하여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산의 적을 공격하다가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대패해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수사 최호(崔湖) 등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
그러나 1604년 임란후 이순신, 권율(權慄)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으로 책록되어,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고 원릉군(原陵君)에 추봉되었다.
조상대대로 무인을 배출한 가문 출신인 원균은 평택에서 태어났다. 그를 모신 사당에는 지금도 당시 조정으로부터 받은 각종 훈록과 교지 등이 보관돼 있다. 임란 당시 전쟁에 참전한 정경운이 쓴 <고대일록>이나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 등에는 원균의 패전은 조정의 무리한 참전 강요로 인한 것이지 그의 죄과가 아니라고 두둔하는 기록이 전한다.
사당 옆에 있는 원균의 묘(假墓) 한켠에는 멀리 칠천량에서부터 그의 신발 등 유품을 물고 달려 와 죽은 애마가 묻혔다는 애마총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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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소사리의 대동법 기념비. 충청도민들이 갹출해 김육의 대동법 실시를 찬양하는 이 비를 세웟다 한다. |
■ ‘조선 최대의 세제개혁’ 대동법을 실시한 김육
대동법(大同法)은 조선시대 최대의 세제 개혁으로 불리며, 김육(金堉, 1580~1658)은 ‘대동법의 아버지’라 불린다.
임진왜란 이후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격동기를 살았던 김육은 한 때 가평 잠곡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일했는데 항상 민중의 비참한 생활에 눈길을 돌리며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를 고심했다고 한다. 경기도 가평 출신인 김육은 아예 자기가 살던 마을 이름을 따 호도 잠곡(潛谷)이라 지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기록한 대동법시행기념비는 평택시에 있어 그 배경이 관심을 끈다.
김육은 1638년(인조16)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되자 그간 경기도와 강원도에 한정된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대동법은 특별세인 공물의 납부절차상 빚어지는 방납(防納)의 폐해를 없애고자 일반세수의 10% 정도만 부가하여 쌀로 대신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토지를 많이 소유해 세금이 늘어난 양반 지주들과 중간이득을 취할 수 없게 된 관리들과 방납업자들의 반대가 거세 실시하지 못하다가 결국 그가 영의정에 오른 1651년(효종 2) 충청도에서, 1657년(효종 8) 전라도에도 각각 대동법이 관철됐다.
평택의 기념비는 1659년(효종 10) 대동법 실시에 감사한 충청도 백성들이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목인 소사리에 세웠다. 이밖에 전국 각지에 대동법을 찬양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한다.
김육은 비록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것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후 대동법은 1666년(현종 7) 함경도, 1677년(숙종 3) 경상도, 1708년(숙종 34) 황해도 등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각지에서 대동법이 실시될 때 그 기준이 된 것은 김육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기 위해 제출했던 〈대동사목(大同事目)〉이었다.
평택 대동법 기념비의 국가문화재 지정을 요구하는 평택 시민문화단체 회원들은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부호의 부담은 늘고 백성의 부담은 주는 대신 국가의 재정 수입은 늘었다고 한다”면서 “공리공담이 아닌 개혁의 참 뜻을 돌아볼 수 있는 역사적인 기념물”이라고 소개했다.
강동호 기자 kotrin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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