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머리오리'( 오리과/수면성 오리) 2022.2.10
I can't give up fresh grass!
( 홍머리오리 수컷/사진 박형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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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다갈색에 가까운 머리에
밝은 베이지색 이마털로 장식한 귀여운 '홍머리오리'를 겨울이면 다녀가는 흔한 철새니 이름 알고 암·수 구분하면 됐다고 여겼다.
(언덕을 오르는 홍머리오리/사진 오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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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 만경강으로 탐조가던 길,
전주천 하류에서 홍머리오리 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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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물 반 홍머리오리 반이다.
물에서 놀던 오리들이 무리무리 날아 올라
천변 자전거 도로 옆 언덕에 고개를 처박고
빛의 속도로 뭘 먹는다.
뭘 먹지? 씨앗을 먹나? 환삼덩굴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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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사람이 지나가면 일제히 날아 올라 강으로 갔다가 다시 언덕으로 올라온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다시 강으로, 다시 언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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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것을 먹길래 포기하지 않을까?
호기심에 죽치고 앉아서 한참을 기다려도 보고
도로에 서서 로봇처럼 한 발짝씩 접근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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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머리오리들이 다녀간 언덕을 살펴보니
어린 풀들이 성묘 때 벌초한 것처럼 말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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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과 물풀만 먹으려니 했던 내 얍삽하고
부끄러운 고정관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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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거든?
We can't give up fresh grass!
우리는 신선한 풀을 포기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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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요맘때 금산사 오리알터에서 만났던 원앙이
사람 눈치 봐가며 언덕을 들랑거리던 이유도
바로 신선한 풀 때문이었어.
가을 내내 겨울 내내 씨앗을 많이 먹었으니
신선한 풀을 찾는구나.
먼길을 떠나야 하니 곡류에 부족한 성분도 챙겨 먹어야 영양 균형도 맞을 테고.
' 특식 먹는데 방해했지? 간다. 맘 놓고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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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잊고 있었네.
'한 생명을 알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 생명이 어떻게 사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홍머리오리 풀 뜯어먹는 소리 하느라
글이 길었습니다.^^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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