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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포스코를 생각나게 한 영화 '영웅'
백태윤 선임기자

 

한겨울 언 강에서 날개를 퍼득거리는 철새를 보면 '추위가 저리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도 자기 중심적인 편협한 시각에 갇혀 살고 있다. 다른 민족의 아픔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수천 년 민족의 생존기반을 앗으려한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지만 우리 독립투사들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 만큼 힘든 결단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처절한 영화를 보기에 영화관은 미안할 정도로 아늑하고 포근했다. 주연배우 정성화는 주인공 안중근을 너무 닮아 다큐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하게 할 정도다. 그러나 조마리아 역엔 너무 후덕한 배우를 썼다. 좀 마르고 지친 평범한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점은 그 뿐 아니다. 어차피 뮤지컬영화이니 우렁찬 성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을미사변이 영화의 주소재가 된 듯 안중근의사의 의거의 촛점을 흐리게 한다. 

구한말의 시대상을 민비시해 사건만으로 필터링하는 것 만큼 심각하게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민비가 어떤 인물인가? 시아버지 대원군과 권력투쟁 하다가 외세를 불러 들였으며 사치와 무속으로 조선의 멸망을 앞 당긴 인물 아니었던가? 

우리 독립운동사를 확인도 안 된 '시해 현장' 신파극으로 연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는 '설희'라는 시해현장을 목격한 궁녀를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결정적인 조력자로 등장시킨다. 발랄한 상상력이 영화의 흥미를 돋구기는 했으나 그 덕분에 정작 짚어야 할 부분은 거의 다루지 못 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평화'라는 간결하고 알기 쉬운 논리로 맞선 조상의 자랑스런 정신적 유산을 부각시키지 못 했다. 그런 아쉬움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너무 닮았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조선의 식민지화도 좀 늦춰졌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은행 머릿돌에 친필을 남길 정도로 이미 조선 점령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일본 엔화 모델이기도 하니 일본 여행을 가면 그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에 비해 동양 평화를 헤치고 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일제의 만행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거사를 한 안중근 의사는 그 유해의 행방 조차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은 기독교 신자로서 세례까지 받았다. 그리고 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런 우리의 영웅을 미속과 미신에 빠져 국고를 탕진하며 외세에 휘둘려 쓰러져 가던 봉건완조의 충신 정도로 비춰지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일제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배상문제 해결안으로 우리 기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국내 최대 제철소의 건립자금이 식민지 배상자금, 그 돈이었던가? 

그렇다면 정부 지분 매각결정(민영화)에서도 우리 피해자들의 의견이 반영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렇게 수십년 동안 엄청난 이익을 봤는데도 한 푼도 안 썼다가 일본의 무슨 주장이 먹혔는지 지금에서야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세월이 너무 흘렀다. 다 가시고 얼마 남지 않으셨다. 더 흐르면 잊혀지고 감춰질까? 영화 '영웅'이 근대사의 한 인물을 꺼내 세워낸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백태윤 선임기자  pacific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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