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데,
그랬네.
1시간 40분 배를 타고 송이도에 첫 발을 내 딛는 순간
오래된 영화 속으로 들어 온 듯 한 환상에 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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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비 오는 길을 나서다 자석에 이끌리듯
마주하게된 거대한 두 그루 팽나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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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던 왕소사나무 군락지 가는 길, 길은 풀에 가려 사라지고 그저 방향만 보고 비를 맞으며 걸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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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펼쳐진 정글,
왕소사나무 숲이야.
몇 년을 내버려 두었을까?
풀은 이제 안내판까지
집어삼킬 기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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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울창하게 가린 왕소나무들이 비와 바람에
맞춰 춤을 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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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나무들이 추는 격렬한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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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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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롭고 두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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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을 나서다 길을 잃었네.
길은 사라졌고 인간은 이제 그만 들어오라는 듯 사나운 산딸기와 찔레덤불이 바람에 일어나 길을 막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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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를 때 먼빛으로 눈맞춤 해두었던 커다란 팽나무 고사목이 아니었으면 오래 숲길을 헤매고 다녔을 거야.
죽어서도 숲을 지키고 선
저 빈 가지를 방향 삼아
없는 길을 내고 숨은 길을 찾아
다시 인간의 길로 내려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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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바위가 눈에 선한
아름다운 큰내끼를 어찌 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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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갯벌 위를 춤추고
다녔던 그 순간을 어찌 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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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백합을 캐고
동죽을 캐던 살아있는 갯벌의 감촉을 어찌 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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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함께한 여행이
불편마저도,
젖고 젖어 축축한 시간들도 즐겁고 행복했으니
우리는 잠시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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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안내해주던
나이를 헤아릴 수 없게 웅장하던
죽은 나무님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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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뚫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34번 왕소사나무님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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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을 나오며 만났던
두 그루 팽나무님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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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습지에 폭풍의 언덕 히드꽃처럼 누웠다 다시 일어나 흔들리던 산조풀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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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몽돌해변,
바람에 날아 온 접시꽃
한 포기가 피워낸 분홍빛 사랑을 기억해.
시간은 나를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데려다 놓았네.
어느새
그리움으로 눈시울이 찡한
안녕, 송이도...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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