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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의 명소기행] 자유를 노래한 저항시인 김수영을 만나러 가는 여행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우뚝 서있는 <김수영문학관> 탐방기

 

시인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의 모습 ⓒ박세호

겨울 스포츠와  여행지 탐방 등으로 방학을 맞은 자녀(손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은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여기에 더하여 때로는 지역에 있는 문학관이나 기념관에서 문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교양을 쌓는 일도 자녀들의 성장기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시인이 남긴 원고들 ;ⓒ박세호

방학이 끝난 후에라도 좀 더 진지한 대화를 위해서라면 주말이나 휴일 같은 때 잠시 시간을 내보면 좋겠다. 

자녀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사진도 찍으면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벽에 게시된 김수영의 시 <풀>  ;ⓒ박세호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498-31에 소재한 김수영문학관은 한국문단이 자랑스럽게 배출한 김수영시인의 한 생애를 기억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을 후세에 이어가기 위한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오밀조밀하게 갖춰진 도서관 내부 ;ⓒ박세호

김수영 시인은  현대사의 큰 파도가 용솟음치는 데 따라  고난을 겪고 감수하면서 그의 인격과 작품세계가 형성되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어린 시절을 거쳐, 커서는 6.25동란을 겪으면서 포로수용소에 들어가는가 하면, 자유의 몸이 된 이후에도 4.19혁명과 5.16혁명으로 이어지는 사회 변동 속에서 정직한 예술가, 문필가로서의 독특한 문학 정신을 실천하면서 저항적 투쟁의 삶을 살았다. 
지적이고 사회비평적이면서도 서정성을 견지한 그의 탁월한 시와 문학세계는 폭넓게 인정을 받았다. 

 

시 <풀>을 형상화한 대형 스크린 벽 ⓒ박세호

그러다가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결과 많은 동료 문인들과 아끼는 시민들의 품을 떠나야했다.  김수영문학관에서는 그의 삶의 여정과 문학 정신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관된 초기 작품과 육필 원고들을 읽어보면서 그 시대와 작품과 감동을 진하게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관 방문의 의미가크다.

문학 지망생들은 작가의 삶의 애환과 더불어 힘겹게 일궈낸 작품들이 제공하는 진한 감동을 체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정말 큰 수확이다. 

 

김수영문학상  ⓒ박세호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어려운 시들도 썼기에 대중과 먼 것처럼 보이는 시인에게 의외로 국민들이 애송하는 시가 많다는 점이 놀랍다. 

50여년이 경과한 지금도 청소년과 신세대 독자들을 많이 거느린 이유에는 대학입학 수능고시 영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국어 시험 (혹은 모의 시험)에 자주 나오는 10-20명 대표 시인들 가운데 빠지지 않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생략)

 

김수영문학관  전시관  ;ⓒ박세호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생략)

김수영 시인이라고 하면 이름을 금방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시 몇 수만 내놓으면 금방 친숙한 감정을 드러낸다.  

막상 문학관을 방문할 때의 준비사항이나 마음가짐이 어떠하면 좋을까 알아보았다. 

  4호선 쌍문역에서 마을버스 6번을 타면 문학관 앞에서 하차한다. ⓒ박세호

시인과 작품과 시대 배경 등에 대해서 미리 알아보고 오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단체여행의 경우에는 인솔자나 해설사가 A4용지 반 장 정도 요약본을 배포하거나 카톡으로 보내주면 좋을 것이다.  시 제목도 두세 개 알려주어서  검색하고, 나중에 애송시를 정해서 낭송하고 암기도 해보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어머니와 아내와 여동생이 함께 한 시인의 가족사 ⓒ  박세호

옥상 정원에서는 구름과 경치를 감상하면서 소감을 교환해도 좋다. 

작가의 연보가 한국 사회의 근현대사와 사회변동 사건 등에 연계해 도표화 해놓았으니 그 시대상을 꼼꼼이 들여다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문학도 이해하고, 근현대사 역사도 실감나게 청취할 수 있다. 

시인이 남긴 원고들 ⓒ박세호
 

우선 작가의 생애부터 살펴본다.  김수영 시인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김수영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을 지망한 청년이었다.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으나,  이후 1945년 해방이 되어 가족과 함께 만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 이듬해 김수영은 <예술부락> 제2집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에 나선다.  시어와 일상어가 완연히 구별되지 않고, 작품에 적용되기도 하는 등 삶과 일치하는 정직성을 담보하려고 노력한다. 

해방된 조국의 정세변화도 순탄치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처절한 기억들 ⓒ박세호ⓒ박세호

민족상잔의 역사적 비극을 겪은 것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겪은 일이다.  영어강사였던 김수영은 의용군에 징집되었고 두 달 만에 훈련소에서 탈출했다. 

서울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자유를 빼앗긴 세월이었고 좌우대립이 치열한 공포의 시간들이었다.  1952년 겨울, 석방되었다. 그러나 돌아온 서울에서의 삶도 평온치 않았다. 1959년 출간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은 김수영 생전에 출판된 최초의 시집이었으며, 현실과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을 내포하고 있었다. 

 

   '시여 침을 뱉어라' 등 뛰어난 산문을 썼다.  ;ⓒ박세호

1960년 봄, 김수영의 시적 세계를 변화하게 만든 큰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이었다.
통제와 억압의 시대 가운데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민중의 목소리를 들었다. .4·19혁명 이후 김수영의 시는 현실참여적이었다. 

 

시인의 동생과 부인이 함께한 가족사진  ⓒ박세호


그는 자유와 사랑을 외쳤다.   김수영 시에서 자유의 이상은 견고해졌고 작품세계는 확고해졌다. 
시인은 추상적인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그 허상이 뭉쳐서 두루마리로 펼쳐놓은 시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읽고 소통하는 객관적인 시라는 가능한 현실로 바뀐다. 

 

     젊은 시인의 모습이 오래 남는다 ⓒ박세호

독자는 시로부터 새로운 현실을 보고, 느낀다.  김수영 시인의 사후 벌써 55년이 흘렀지만, 그의 시는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그가 꿈꾸었던 이상과 비평의식은 오늘날의 사회 현상 속에서도 그 기능이 그대로 발휘되고 있다. 

분단 체제의 고통, 부정 부패에 대한 거부감,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고민은 이 시간 현재 그대로 벌어지고 있는 삶의 현장이요 현실이다.  
딱딱한 사회 정의를 부르짖었던 김수영.의 시는 또한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수영문학관 전시관 내부  ⓒ박세호

문학관 방문자들이 이런 주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지적인 충만감을 터득한다면  오늘 하루의 김수영 문학관 나들이는 아주 보람이 있었다고 먼 후일 아마도 회고할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당시 국내외적으로 그에 대한 작가적 평가는 탄탄한 궤도에 올라가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불의의 비보가 날아든 것이었다. 순식간의 교통사고로 4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슬퍼했다. 그리고 아쉬워했다.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언'을 남긴 작가 ⓒ박세호

가까운 문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비타협적이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김수영 시인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가던 일반 대중들의 충격도 컸다. 

김동리, 박목월 등 문인들이 중심이 돼 시인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취지에서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서울 도봉산 기슭에 시비를 세웠다. 문인들과 독자들의 성금을 바탕으로 건립된 김수영의 시비에는 김수영의 대표작이기도 한 시 <풀>이 새겨져 있다.  

김수영문학관 현판 ⓒ박세호

김수영문학관에도 그의 시 <풀>이 벽에 액자로 걸려있고, 또 큰 초록색 풀밭이 와이드스크린으로 벽화처럼 형상화 되어있다. 

김수영 시인이 생전에 시인으로서의 작품 활동을 하였던 도봉구에는 그의 본가와 묘가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시비가 있고 문학관이 있다.  

 

  소장하고 있는 책 디스플레이 ⓒ박세호  ;ⓒ박세호

김수영문학관은 도심지에서 약간 벗어나 주거 지역 내에 들어앉아 있지만, 교통편을 알면 쉽게 찾아 올 수 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쌍문역 에서 하차 후  2번 출구로 나와 버스 130번, 1144번, 노원15번을 타고 정의공주 묘 앞에서 하차한다. 

가장 편리한 것은 역시 2번 출구로 나와 06번 마을버스로 환승하면 되는데, 김수영 문학관 입구 바로 앞에서 하차한다.  

김수영문학관이 도봉구에 있는 이유  ⓒ박세호


김수영 시인을 기림과 아울러 6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흐르는 원당샘 공원, 연산군과 정의공주 묘, 그리고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과 함께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을 제공하고자 도봉구에서 김수영 문학관을 건립해 2013년 11월 27일에 개관을 한 것이다.  

 

김수영문학관 건물 ⓒ박세호

 참고로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따님인데, 훈민정음 창제 작업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봉구청과  도봉문화재단에서 관리하는 김수영 문학관은 한 시인의 문학 기념관으로 지상 4층 지하1층 등 5층 건물에 도서관과 전시실과 단체행사를 할 수 있는 강당이 있는 큰 규모라고 자랑할 수 있다.  

 

귀한 소장본들이 갖춰진 김수영문학도서관  ;ⓒ박세호

도봉구 뿐 아니라 서울 시민들의 문화 발전과 행사 진행을 위하여 도움이 되고 있다. 

인문학 강좌, 시 낭송회, 지역사회의 강연회, 문화활동과 행사, 대관활동 등 다양한 용도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김수영문화관은 규모가 크고 시설도 좋다. ;ⓒ박세호
귀한 소장본들이 갖춰진 김수영문학도서관 ⓒ박세호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돌아보니 김수영문학관 빌딩이 우람하게 솟아있었다. 작지 않은 건물이다. 각종 행사를 위해서도 유용하겠지만, 우리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곳이라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간간이 만난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곧 여행이다. 그 여행의 길목에서 운명처럼 우리는 기차역, 그리고 버스정류장을 만난다. 거기서 쉼을 갖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또 다른 일정으로 갈아탄다. 

자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어느 한 모퉁이에 김수영문학관이라는 간이역을 하나 설정해 보면 어떨까?  

 

김수영 시인이 서재에서 사용하던 집기들   ;ⓒ박세호

분주한 나의 인생에서 어느 하루 휴가를 내고 어린 시절 꿈꾸어왔던 나의 미래는 어디까지 왔을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이곳에서 그동안 찬란했던 (혹은 고단했던)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시대별 주제별로 잘 정리된 장서들도 읽어보면서 나의 인생을 거울처럼 비춰보면 과연 어떨까? 그 당시 살았던 문인들, 정치가들 그리고 희비애락을 꿈꾸었던 다양한 처지의 민초들과도 만나보면서 너무나 숨가쁘게 돌아갔던 나의 작은 우주도 잠시 정지한 채, 전 인생의 주체자요 책임자인 나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회고의 시간도 한 번 가져보면 좋을 것이다. 

이 글을 보신 많은 분들이 이제는 고인이 되신 흘러간 시대의 한 시인을 만나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시기를 기원해본다. 

/글ㆍ사진=박세호 선임기자(축제뉴스 CHOOKJENEWS.CO.KR)

박세호 선임기자  bc4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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