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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도의용수비대를 아십니까?전북동부보훈지청 이동보훈팀장 김명한

6.25전쟁이 발발한 지 벌써 69년이 흘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이 자유대한민국을 침략했다. 이어 3년 1개월 동안 한반도는 민족 최대의 피해를 입고 38선을 사이에 두고 휴전했다. 직접적인 대규모의 전쟁은 없었으나 순간순간 국지전으로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 트라우마에 긴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편 전쟁으로 정부의 관심이 미치지 못한 틈을 타 일본은 독도에서 어업하고 있는 울릉도민들을 쫓아내고 1952년 일본땅(다케시마)이라는 나무표지판을 세우고 독도를 불법 점령했다.

1953년 4월 20일 전투에 참전하고 부상당해 고향 울릉도에 돌아온 홍순칠씨는 울릉군민 33명과 뜻을 같이하여 독도를 자신들의 힘으로 되찾고자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였다.

정부의 지원 없이 개인 돈을 들여 식량과 무기, 의약품 등을 준비하여 독도에 있는 일본땅 푯말을 뽑고 1956년 12월 30일까지 3년 8개월 동안 독도에 상주하며 일본인의 출입을 저지했고, 6차례 일본 순시선을 물리쳤다.

1956년 11월 21일 새벽 6시 마지막 6차전 전투에서는 일본의 무장 순시선 3대와 항공기1대가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향해 접근했을 때 수비대원들은 숨을 죽이고 유효사거리까지 접근하기를 기다려 조준경도 없는 박격포로 배의 중심부를 타격하여 아군의 큰 피해 없이 일본순시선을 물러가게 했다.

그 전투가 있은 후 현재까지 독도에는 일본순시선의 접근이 없었으며 경찰의 독도경비대 창설로 의용수비대의 임무는 끝났다. (재)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에서는 매년 11월 21일을 “독도대첩기념일”로 정하여 대전현충원 독도의용수비대원 묘역을 참배하고 수비대원들의 영토수호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기념식을 거행한다.

33명의 대원 중 27명이 돌아가시고 이제 6명만이 생존해 계시나 거의 90세의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시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목숨 바쳐 지킨 독도가 후손들 대대로 잘 지켜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만일 그분들의 결단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독도는 어찌되었을까? 아찔하기까지 하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이동보훈팀장, 독도의용수비대 전문강사 김명한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저문다. 말로만 하는 나라사랑보다 목숨 바치는 나라사랑을 실천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게 감사를 드리며 특히 6.25전쟁기간 중 빼앗길 뻔한 독도를 찾아주시고 지켜주신 독도의용수비대원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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