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남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한강처럼 터무니없이 크지 않고 건기에는 말라버리는 지방의 작은 하천과도 다른 풍부한 수량의 남강이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여기엔 상류의 진양호가 사시사철 적절한 물이 흐르도록 수량관리를 해 준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진주는 싫든 좋든 임진왜란과 연결돼 있다. 이는 임진왜란중 조선이 거둔 3대 대첩 중의 하나가 진주대첩이고, 그것도 두 번 씩이나 큰 전란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주도 결코 이런 인상을 지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400여년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성채 하며, 남강 가에 우뚝 솟은 촉석루의 의연한 모습만 봐도 그렇다.
^진주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진주성은 마치 거대한 임진왜란 전적지 같다. 진주성은 정문인 공북문과 동문에 해당하는 촉석문, 망루인 북장대와 서장대, 남쪽 망루에 해당하는 촉석루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성 안에는 촉석공원이 잘 다듬어져 있고 관아가 있었던 영남포정사, 진주에서 가장 큰 절인 호국사, 또 임란 때 싸운 제(諸)씨 형제를 기리는 쌍충사적비, 그리고 국립진주박물관 등이 있다. 촉석루 옆에는 그 유명한 의기 논개의 충절을 기리는 의기사가 있고, 절벽 바로 아래에는 그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투신한 의암이 있다. 의암은 약 3~4평 크기로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1.7km의 성곽의 모습은 내성에 불과하다고 한다. 주변의 낮은 산들을 에우르며 구 시가지를 모두 포함했던 외성은 지금은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지금의 내성도 1963년 1월 21일 사적 118호로 지정된 이후 복원된 것이며, 남원의 광한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남도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촉석루 역시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1960년 복구한 것이라 한다.
^지도를 펴 놓고 진주성의 옛 모습을 가늠하다 보면 이 곳이야말로 천혜의 요새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흐르는 남강은 자연히 남쪽을 가로막는 천연 해자 역할을 했을 것이고, 서쪽은 5~8m의 높은 절벽이어서 접근하기 쉽지 않았으며, 북쪽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남강의 배후습지성 늪이 가로 놓여 있었다 한다. 이런 요충지에 자리 잡은 진주성은 동쪽의 낮은 산들을 연결하는 성곽만 잘 지키면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쉽게 침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이 승리를 거둔 제1차 진주성 전투(1592년 10월 5일)는 이러한 지리(地利)를 잘 이용한 싸움이었다. 3,80여명의 조선군은 김시민(金時敏) 장군(당시 목사)의 지휘아래 6일간의 대접전에서 수천개의 대나무 사다리(竹梯)를 만들어 공격해 오는 2만의 적병을 불화살과 화약을 터트려 물리쳤다. 이 싸움에서는 왜군의 조총에 대응해 승자총통, 현자총통 등의 총포와 독창적인 시한 폭탄인 비격진천뢰 등의 신무기가 등장했다. 낙동강을 오가며 이름을 떨쳤던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도 성 바깥에서 응원전을 펼쳐 적과 아군에게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제2차 진주성 전투는 1차 때와는 달랐다. 천기(天機)가 크게 불리하였고 1차전 때와 달리 아군간의 인화(人和)도 사라졌던 것이다. 임란 당시 19일만에 한성을 점령하고 멀리 함경도까지 돌아 나온 왜군은 1차전 때와는 달리 주력을 진주성 공략에 집중했으며, 이 때 아군은 병력 운용에 대한 견해 차이로 크게 분열돼 있었다. 제1차 싸움의 패배를 만회하고자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등 조선 침략의 주장들에게 복수전을 하도록 특별 명령을 내린다. 왜군은 6월 15일부터 작전을 개시하여, 인근 읍성을 점령한 다음 19일부터 10만 대군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20만이었음을 감안하면 2차 진주성 전투는 왜군들에게 그야말로 사활을 건‘올인’전투였던 셈이다.
^반면 조선군은 7만여명이 성 안에 있었지만 실제 전투병은 1만에 지나지 않았고 거의 인근의 피난민들이었다. 1차 전투의 승리의 주역이었던 김시민 장군도 1차전 때 맞은 총상의 후유증으로 이미 사망한 뒤였으며, 지도부의 반목과 질시 등으로 외부의 지원도 끊긴 상태였다. 조선군은 전라도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지휘로 10일간을 버티다가 전원 옥쇄하고 말았다. 왜군은 복수를 위해 성안에 살아 남은 양민 모두를 도륙해 피비린내가 천지를 채우고 시체가 멀리 낙동강 하구까지 흘렀다 한다. 이 전투에는 임진년 8월 금산에서 아버지 고경명과 동생 인후를 잃고 광주에 돌아와 재차 의병을 모집한 고종후(高從厚)를 비롯, 동복현감 황진(黃進), 나주의 양산숙, 보성에서 기병한 장윤, 광양의 강희보, 희열 형제 등 전라도 의병들이 대거 참가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는 명분에서다. 김천일, 황진, 최경회는 훗날 ‘진주 3장사’라 일컬어졌다.
^진주는 비단 임진왜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석기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오래된 도시로서 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다. 삼한시대땐 변한의 수도였고 대가야에 속하였다가 삼국시대 때는 백제의 거열성(居列城)으로 자리잡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야 비로소 신라의 영토가 된다. 이때부터 유명한 소싸움놀이가 시작됐는데, 이는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기념잔치의 성격이었다. 백제의 옛 고토에서 백제의 멸망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리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백제의 신민이었던 사람들이 이 행사에 적극 참가했을 것을 생각하면...승자와 패자의 역사는 원래 그런 것이다.
^진주는 고려시대 들어 크게 번창했다. 고려초기 대거란 관계에서 이름을 떨친 하공진(?~1011), 강민첨(?~1021)이 진주 출신이다. 하공진은 거란의 2차 침입때 일부러 볼모를 청해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을 유도했고, 강민첨은 3차 침입 때 강감찬의 부장으로 활약했다. 고려 중기 무신정권이 세워진 이후에는 최충헌의 외가가 이곳 진주에 있었다 해서 이곳 출신들이 대거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진주가 진주 강(姜)씨의 본관이 된 것은 통일신라 헌강왕 때 정순공 강진(姜縉)이 진양후에 봉해진 이후다. 진양은 진주의 옛이름이다. 거란을 제압해 고려 500년의 초석을 놓은 강감찬은 비록 금주(衿州, 지금의 서울 봉천동) 출신이지만 그의 5대조 여청(餘淸)이 신라로부터 시흥군으로 이사해 살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 곳 진주와도 인연이 있을 듯 싶다. 이 밖에도 진주의 토성으로 하(河), 정(鄭), 소(蘇)씨가 있고, 유(柳), 임(任), 강(康)씨도 이후 진주에 자리를 잡았다.
^진주는 이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인구 30만의 단순한 소비도시가 아니라 옛 영화를 되살려 교육, 문화관광도시로 새롭게 성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옮겨가고 난 뒤 또 다시 공업도시 창원으로 도청소재지를 빼앗겼지만 서부경남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되찾고자 하는 이곳 사람들의 열망은 간절하다. 장일영 문화유산해설사는 “진주성과 남강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라며 “이 같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이제는 음식, 문화, 바이오산업이 함께 어우러진 친환경웰빙도시로 거듭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여행메모>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서진주 IC에서 빠져 나온다. 구마고속도로 나와 남해고속도로로 타고 진주 분기점에서 대진고속도로로 잠시 옮겨와 서진주 IC로 나와도 된다. 남강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소백산맥 동쪽 사면을 흐르며, 상류 물줄기는 남계천, 경호강 등으로 부른다.
#음식숙박 = 남강변의 동방호텔(055-743-0131)이나 주변 모텔단지를 이용할 수 있다. 아리랑(748-4556) 에선 이 지역 전통의 교방 한정식을 내온다. 중앙시장 안에 있는 천황식당(055-741-2646) 등은 육회를 얹어 낸 진주비빔밥이 유명하다.
#주변볼거리 =정부수립 1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개천예술제와 임진왜란때 순절한 사람들을 기리는 진주유등축제가 매년 10월 개최된다. 진주시민의 휴식처인 진양호의 우약정(雨若亭)에 오르면 주변 경치를 굽어볼 수 있다.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011-868-6479)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삼베를 제작한다. 삼베는 살균작용이 있어 아토피나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마을 안에 있는 남악서원은 1922년 경주의 서악서원을 본 따 만든 것으로 김유신, 설총, 최치원 등 3인을 봉안하고 있다. 이 밖에 이반성면에 있는 경남수목원(055-771-6541), 바이오벤처단지인 바이오21센터(761-9831) 등이 있다.
#박스-진주 소싸움
^‘빡~빠박~빠바박 빠박~’
^소싸움을 구경하는 일은 의외로 박진감이 넘치고 재미있다. 거친 기세의 수소들이 뿔을 이용해 좌우 연타 공격을 가할 때마다 장내는 일순간 모래먼지와 군중의 함성으로 뒤덮인다.
^소싸움과 얽힌 경북 청도군과의 힘겨루기는 더욱 재미있다. 청도군은 매년 4월에 소싸움대회를 여는 반면 진주시는 5월과 10월 매년 두 차례씩 소싸움 대회를 연다. 그런데 1990년 뒤늦게 출발한 청도의 소싸움이 잘 알려져 있지만 일제시대부터 근대적 형태의 소싸움이 시작됐다는 진주는 오히려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청도의 소싸움이 그 자체에 특화돼 홍보가 잘된 반면 진주는 주행사인 논개제(5월)나 개천제(10월)의 부대행사로 소싸움이 열리는 탓에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내려왔다는 진주의 소싸움은 전국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청도의 소싸움에 매회 120여마리가 출두하는데 비해 진주는 330마리가 훨씬 넘는다. 상금규모도 대상이 1천만원 등 1억원이나 되며 제한적인 범위에서 소규모 도박판도 벌어진다. 소싸움에서 승리한 소들의 몸값은 일반 소의 10배가 넘는 1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원래는 남강 둔치 백사장에서 경기가 열렸으나 지금은 진양호 초입에 세워진 상설 소싸움 경기장에서 대회가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 2008년부터 시작된 ‘동물보호법’에 따라 전국의 닭싸움, 개싸움, 말싸움 등이 모두 불법화됐지만 소싸움만이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농림해양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소싸움대회를 개최하는 곳은 진주, 청도를 포함, 의령, 정읍, 완주 등 11개나 된다.
^이 밖에도 진주 사람들은 비빔밥, 논개제, 탈춤 등이 모두 이 곳 진주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진주시에 따르면 비빔밥은 임진왜란에서 유래하므로 동학란에서 유래한 전주 비빔밥보다 오래됐고, 논개제는 원래 의기사가 있던 진주에서 지내는 것이 맞고, 탈춤 역시 안동에서 관광상품화를 위해 일부러 진주까지 찾아 와 그 원형을 배워 갔다고 한다. 진주 사람들이 워낙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다 보니 작금의 관광문화 유치전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이중 논개제는 최근 논개 표준영정을 바꾸면서 논개의 탄생지인 전북 장수군과 협조관계를 이뤄 소모적인 원조 논쟁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두 지자체는 2008년 5월 논개 영정을 친일논란을 빚은 김은호 화백 작품에서 윤여환 충남대 교수 작품으로 변경, 공동 봉안했다. 하지만 장수군은 논개제를 지난 55년부터 탄생일에 맞춰 매년 가을(9월 9일)에, 진주시는 2002년부터 서거일에 맞춰 매년 5월(실제 논개 서거일은 진주성이 함락된 6월임)에 각각 개최하면서 두 지역간의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관리자 kotrin@chook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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