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 환하게 밝히는 꽃의 향연
예부터 매화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조높은 선비의 상징이었다.
매서운 칼 바람이 완전히 가시지도 않은 때, 혼자 조용히 꽃을 피워 제일 먼저 봄이 왔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꽃의 품등을 매기며 매화를 제1품으로 꼽았다. 4군자(梅蘭菊竹) 중에서도 제일로 친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화는 오랜 옛날부터 선비들의 시나 그림의 소재로 가장 많이 사랑받아 왔다.
해마다 3월 중순이 되면 남도의 섬진강가에는 흐드러지게 핀 매화 꽃이 온통 마을을 뒤덮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전남 광양군 다압면 도사리 일대 섬진강 어귀의 매화마을에는 어느 봄날 겨울의 정적을 깨고 갑자기 마을이 환하게 밝아진다.
마을 주변의 밭과 산 능선 40만여평에 심어진 100만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일시에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마을을 전혀 딴 세상으로 바꿔놓는다.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관광객들이 꽃길을 따라 재잘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 시인의 노래한 동양적인 이상향에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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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매화마을의 중심은 청매실농원이다.
백운산 중턱에 자리잡은 5만여평 규모의 이 농원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마을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전문적인 매화나무 식재로 수년전부터 유명세를 탄 곳이다.
이 농원의 주인인 홍쌍리(67) 여사는 인근 하동에서 시집 와 40여년간 시아버지 고(故) 김오천 씨의 유지를 받들어 매화농원을 일구어 왔다.
이곳의 매화와 농원 뒷편의 대나무 밭은 영화 ‘서편제’와 ‘취화선’ ‘바람의 파이터’ 등의 무대가 되어 온 곳이다.
최근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촬영지로 사용됐다고 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집 앞 마당 장독대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2,500여개의 장독들은 홍 여사가 정성껏 만들어 온 매실 고추장, 된장, 장아찌들이다.
장독대로 유명한 곳이 더러 있지만 이곳 청매실농원의 장독대는 매화꽃 사이로 바로 눈 앞에 섬진강이 펼쳐져 있어 산과 강이 하나로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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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돼도 이곳 매화마을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에 설치된 조명시설과 어울려 땅거미가 진 뒤에도 초가와 매화, 그리고 전통 옹기는 한폭의 그림처럼 잘 어우러진다.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매화 향기는 미약하나마 코 끝을 찌르는 강력한 여운을 오래 남긴다.
약간 쌀쌀한 듯한 초봄 밤의 날씨가 오히려 매화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가족 또는 연인들의 사랑과 우정을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각인시킨다.
매화가 지면 매실이 열린다. 매화나무는 보통 높이가 5∼10m로 잎보다 먼저 하얀 꽃을 피우는데, 꽃은 흰색을 많이 띠는 백매화, 초록빛을 띤 청매화, 그리고 붉은 빛을 띠는 홍매화 등으로 구분된다.
6~7월경 열리는 초록색 공 모양의 매실은 지름이 2∼3㎝로 겉에는 털이 나고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매실은 푸른 채로 따서 소주에 담가 술을 만들거나 각종 음식물이나 매실정과(梅實正果) 등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또한 뿌리는 매근, 가지는 매지, 잎은 매엽, 씨는 매인이라 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약재로 사용한다.
홍쌍리 여사는 최근 ‘신지식인’으로 선정된데다 400억원으로 평가된 농원의 오늘의 모습에 크게 감격해 하는 모습이다.
그는 “시아버지가 해방후 일본에서 돌아 와 처음 매실 나무를 심었을 때 사람들은 논농사도 아니고 밭농사도 아닌 것을 짓는다고 손가락질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이곳 매화밭이 도시민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된 것을 보면 너무나 기뻐하실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여행메모
◇찾아 가는 길= 전주와 남원간 국도를 타고 구례를 거쳐 섬진강과 나란한 19번국도(하동쪽) 또는 861번 지방도(광양쪽)를 따라가다 남도대교 앞에서 광양쪽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과거엔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접근했으나 최근에 대통(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장수IC에서 나와 잠시 국도를 이용하다 다시 남장수IC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IC로 간다. 이 경우 막히지 않으면 서울서 편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먹거리와 숙박 = 매실명인 홍쌍리 여사가 운영하는 청매실농원(061-772-4066)은 매실을 원료로 장아찌, 된장, 고추장, 쨈 등을 생산한다. 입장료가 무료인 대신 이들 제품을 팔아 운영한다. 매실을 먹여 사육한 한우를 순천의 고깃집 일품매우(一品梅牛ㆍ061-724-5455)에서 맛볼 수 있다. 쫄깃하고 담백한 육질과 맛이 일반 소고기완 다르다. 청매실농원에서 생산한 매실 된장과 매실 소스, 매실 장아찌가 곁들여진다. 숙박은 가까운 하동이나 광양, 순천 등으로 나간다. 길건너 화개장터에서도 식사와 숙박을 겸할 수 있는 식당과 모텔이 많다.
◇주변 볼거리= 매년 매화꽃이 만개하는 3월중순경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광양 매화문화축제’가 열린다. 길놀이와 마당놀이, 음악회, 사생대회, 백일장, 압화체험, 광양 버꾸놀이 공연 등으로 꾸며진다. 이보다 1~2일 앞서 섬진강 윗동네 구례에서는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여행상품= 우리테마투어(02-733-0882)은 4월 초까지 매주 수,토,일요일 섬진강 매화와 지리산 산수유꽃을 함께 둘러보는 저렴한 당일코스 여행상품을 운영한다. 성인 1인당 2만9,000원. 기타 여행 문의 광양시청 문화홍보과 061-797-2363.
강민규기자 ea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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