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 새만금 방조제, 세계 최대 광주 광산구 우체통, 세계 최대 부산 사하구 바닥분수, 세계최대 울산 울주군 옹기, 강원 양구 세계 최대 해시계.....’
기네스북 등재를 미끼로 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와 기관들로부터 수억원의 폭리를 챙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면서 전국적으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경기도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4일 영국 ‘기네스 월드 레코드(Guinness World Records)’사’ 한국지사를 사칭해 5억여 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법률)로 H기록원 대표 김모(42)씨를 구속하고 기록관리실장인 김씨의 아내 이모(42)씨와 사무총장 민모(4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일부에서는 사기꾼에 속아 국민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들은 비용이 다소 부풀려지기는 했어도 기네스북 등재를 통해 ‘세계 최대ㆍ최고’라는 타이틀을 손에 넣은 만큼 이들 조형물을 적극적으로 관광자원화할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H기록원은 실제 의뢰받은 지방 조형물들을 대부분 기네스 세계 레코드에 접수시키는 데 성공한것으로 밝혀져 앞으로의 재판과정에서 사기혐의가 어디까지 적용될 지 논란이 될 전망이다.
광주 광산구는 지난 2009년 12월 높이 7m, 가로 3m, 둘레 12m, 무게 6톤 규모의 우체통을 수완지구 호수공원에 설치하고 세계 최대 기록 등재를 위해 H기록원에 인증 작업비로 4,000만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실제 기네스 심사·등록비는 4,400파운드(한화 약800만 원) 정도에 불과해 이 업자는 광산구로부터 4배 이상의 폭리를 취한 셈이 됐다.
부산 사하구도 지난 2009년 6월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를 H기록원에 3,600만원을 주고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했다. 이 분수는 총면적 3,519㎡에 지름 60m, 둘레 180m, 최대 분사 높이 55m로 현재 ‘세계 최대 바닥분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양구군의 세계최대 해시계...이는 다행히 세계 기네스북 등재에 성공하였다.>
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도 H기록원에 1억8,500만원을 세계 최장 새만금방조제를 기네스북에 등재해 준 대가로 제공했으며, 울산시 울주군도 지난해 제작한 높이 246㎝의 국내 최대 옹기를 세계 최대 옹기로 등록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9,000만원을 건넸다. 강원도 양구군 역시 지난 2009년 지름 4m 해시계를 세계 최대 기록으로 인증받는데 1억3,8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지난 2009년 6월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부산 A백화점도 이 기록원에 1억원 가까운 등록비 및 대행수수료를 지급했으며, 같은 부산시내 B백화점도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음악분수를 기네스북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H기록원에 9,000여만원을 건넷다.
문제는 이번에 적발된 H기록원이 공신력있는 기네스등록 중개기관이 맞는냐 하는 것.
해당기관에 따르면 2001년까지 국내에는 한국기네스협회가 기네스북 등재를 대행해 왔으나 인증서를 남발하다 2001년 GWR에 의해 직권해지 당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찰에 구속된 김모(42)씨는 2005년 H기록원을 설립해 2008년부터 ‘기네스’라는 문구를 명함 등에 사용하며 등재 대행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H기록원은 본사와 계약을 맺지 않아 로고 사용권한을 부여하거나 사용료를 받을 권리가 없다”면서 “이번 수사과정에서 대부분의 지자체가 ‘어쨌든 기네스북에 등재되지 않았냐’며 등록비가 부풀려진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전했다.
현재 기네스 심사신청은 개인도 할 수 있으며, 심사 신청에 400파운드(약 72만원)를 우선 내고, 등재가 결정되면 등록비로 4,000파운드(약 720만원)를 추가로 내면 된다.
<2009년 11월 '세계 최장' 순천 인절미 만들기 대회...이 기록은 아직까지 기네스북 등재가 완료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자체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정체성 없는 조형물을 조성하고 기네스북 등재에 몇 배나 부풀려진 예산을 들이면서 최대ㆍ최고 기록 경쟁을 남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기네스 등재 비용으로는 모두 5억원에 불과하지만 조형물 조성비까지 포함하면 수십~수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지자체나 기업이 내실보다는 세계 최대ㆍ최고 등 단시간에 성과를 내려는 데만 골몰해 결국 조형물 조성비 및 기네스 등재비용을 낭비한 것"이라며 "이로 인한 예산낭비와 마케팅 비용 증가는 곧장 소비자와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한 시민도 “전국 지자체들이 관광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해당 조형물이 지역의 정체성에 맞는지 안 맞는지도 따지지 않고 무작정 기네스 북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체성 없는 조형물은 최대ㆍ최고 만을 고집하는 한국인 특유의 폐쇄적 글로벌리즘이 나은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강민규기자 ea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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