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을 막으려다 벌집을 쑤신 꼴이 됐다.
지난 10·26 재보궐 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후보의 홈페이지를 사이버 공격한 보좌관 한 명 때문에 당이 격렬한 내홍에 휩싸이고 있는 것.
관련자들은 당선이 유력한 박원순 후보의 사이트와 선거관리위원회의 사이트를 다운시켜 자신의 투표소를 찾으려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할 수 없게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7일 이같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강모(25·아이티업체 대표)씨 등 3명의 피의자들은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인 공모(27·구속)씨로부터 “나경원을 도와야 한다”는 부탁을 받고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강씨 등은 처음에는 범행 연루 의혹을 부인했으나, 심경 변화를 보이며 모든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그러나 공씨는 강씨 등의 자백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아직 사건의 실상은 모두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사건의 진상이 모두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정작 뜨거운 것은 한나라당 내부다. 최구식 의원의 비서의 범죄 행위가 알려지자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당 간판을 내려야 할 판”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마침내 7일 남경필, 원희룡, 유승민 등 3명의 최고위원들이 한꺼번에 사퇴했다.
홍준표 대표는 당 수습과 쇄신을 이유로 사퇴를 거부했으나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어 '홍준표 체제'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홍 대표가 물러나면 당내 최대주주인 박근혜 전 대표가 예상보다 빨리 당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 어떻게 망가지고 누가 새 대표가 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직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왜 당 지도부가 마치 당의 운명이 다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가 하는 것이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이번 선관위 디도스 사이버 공격 사태가 최구식 의원이나 공모 비서 한명이 주도한 사건이 아니라는 추측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최 의원의 비서가 디도스 공격 전날 박희태 국회의장의 행사의전비서(전문계약직 라급) K씨와 술자리를 함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디도스 파문에 여권의 핵심 인사가 관여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도부 사태를 거부한 홍 준표 대표는 민주당 등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와 특위 구성에 동참할 의사가 있다고 짐짓 여유를 부렸지만, 그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자칫 당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할 상황이다.
벌써 소장ㆍ쇄신파 의원들은 의총에서 홍 대표에 대해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다"고 거세게 반발하는 한 편 향후 당 진로를 둘러싸고도 비상대책위원회ㆍ선거대책위원회ㆍ전당대회ㆍ재창당위원회 등 다양한 방안을 쏟아내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지금 한나라당이 처한 상황은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를 연상시킨다"며 지도부 총 사퇴를 포함한 대대적인 당 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전날에도 정책의총 직후 기자들에게 “의총에서 예산 얘기만 하는데, 이제는 당이 수명을 다한 것 같다”고 꼬집은 뒤 “탈당ㆍ재창당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원희룡 최고위원도 “이제 지도부 사퇴로는 늦었고, 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해 지도체제 교체를 거듭 촉구했었다.
강민규기자 ea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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