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21018] 프라미싱 영 우먼 - Promising Young Woman

여기, 에메랄드 페넬 감독과 배우 캐리 멀리건... 85년생 동갑내기 친구이자, 말 그대로 ‘촉망받는 젊은 여성'인 이 두 사람이, 타이틀에 걸맞은 솜씨로 직조해낸 복수극의 서사 <프라미싱 영 우먼>이 있습니다.

영화는 사회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하는 이른바 '강간 복수 드라마의 새 개정판' 인 셈으로, 파괴와 분노의 파토스로 가득 찬 미투 시대의 리벤지 무비로 다가오죠.

<프라미싱 영 우먼>은 밤마다 클럽에서 술에 만취한 것처럼 연기해 남성들을 속이는 30살의
주인공 카산드라(캐리 멀리건 분)의 밤을 내밀히 따라가며 시작합니다.

지금껏 그의 수첩에 꼼꼼히 기록된 바로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늘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접근하는 남자들이 나타나죠.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여자를 데려간 다음 저항 능력이 없는 틈을 타 성폭행하는 수순을 매뉴얼처럼 고수하는데...

그때마다 카산드라는 자신이 술에 취해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았음을, 또한 자신은 성행위를 원치 않음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남성들을 아연실색하게 합니다. 

카산드라는 그토록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일으켜 저승사자의 얼굴을 하고 묻죠. “헤이, 지금 뭐하는 거야?”  

본인을 '캐시' 라 자칭하는 '카산드라'... 그녀의 시그니처 코멘트 직후 화면에는 피가 튀지도 않고, 칼질을 마친 싸이코가 남자들의 손가락을 하나씩 수집한다든가 하는 호러 스릴러 식의 전개도 일어나지 않죠. 

다만 영화는 이러한 상상이 그 남자들의 머릿속에 빠르게 자동 재생되도록 그저 내버려둘 뿐입니다. 

카산드라는 그렇게... 언젠가 잠재적 성폭행 가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남자들이 전보다 조신(?)한 삶을 살도록 혼자만의 조용한 '복수 캠페인' 을 이어나가죠.

그녀는 도대체 왜 불특정 다수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뜻 모를 복수에 열을 올릴까요. 

처절한 앙갚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축소되고 정체된 카산드라의 인격은 다름 아닌 죄의식의 발로입니다. 

7년 전, 카산드라의 분신이자 친자매나 다름없었던... 촉망받던 의대생 니나는 대학 파티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게 되죠. 

하지만 사회가 전도유망한 의대 남학생들을 처벌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 내몰린 그는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까지 내려놓게 됩니다.

카산드라는 절친 니나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복수심에 불타 클럽을 전전하며, 성폭행을 시도하는 뭇남성들을 충격의 혼란에 빠뜨리는... 사뭇 위험한 복수극을 거듭하죠.

눈빛이 돌변한 카산드라를 보고 남자들은 곧바로 뒷걸음질 치며 내뱉습니다. "헉, 당신 싸이코구나!"

자신을 꽤 괜찮은 남자라고 주장했던 남성들은 카산드라의 엽기적인 행동에 치욕, 나아가 공포감을 느끼죠.

이글거리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여성의 가차 없는 자경단식 정의 구현이 온전히 새로운 장르는 아닐 겁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단지 그 복수의 대상으로 방관자였던 주변 여성들까지 지목하고, 그들에게 기꺼이 불온한 트라우마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몇몇 설정을 품고 있는 게죠.

이렇듯 윤리의 영역에서는 다소 거친 마감새가 느껴지지만, 오프닝 신부터 <프라미싱 영 
우먼>은 제 갈 길을 선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나는 팝 사운드와 아날로그 풍의 진분홍색 타이틀 크레딧이 떠오를 때 관객들은 이 
<프라미싱 영 우먼>호에 기꺼이 탑승할 것인지 하차할 것인지를 재빨리 결정해야 하죠. 

영화 초반부, 카산드라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응징을 마친 후 팔을 타고 피처럼 흐르는 도넛의 시럽을 아무렇게나 방치한 채 맨발로 거리를 걸어갑니다.

이어 그는, '영 어덜트'(Young Adult) 성장 소설에나 나올 법한 파스텔 톤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집에서 핑크색 샤워 가운을 입고 나타나죠.

카산드라의 엄마(제니퍼 쿨리지 분)는 서른 살이 되도록, 멀쩡히 다니던 의대를 관두고 방황하는 딸을 못마땅해 하며... 같은 핑크색인 캐리어를 선물함으로써 “이제 제발 내 집에서 나가줄래” 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건네기도 합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그렇게 준법의 반듯한 교외 지역을 무대삼아, 성폭행을 방관하고 심지어 부추기며 주체적 책임을 망각하는 가부장적 시스템을 폭로하고 있죠.

페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파스텔 톤 핑크색의 여성 내레이션에 기댄 복수 스릴러를 꿈꾸며,

'인정받지 못하는 촉망받는 여성 주체와 인정받는 촉망받는 남성 주체' 라는 성폭행 친화적 담론과 그 뒤틀린 사회구조를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학창 시절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카산드라의 친구 매디슨(앨리슨 브리 분)은 결혼하여 아이를 둔, 이제는 중산층 가정의 조숙한 주부이죠.

그는 남성 대학생들은 여자 친구로 페미니스트를 원하는데 그 이유가 뭔가 아는 듯 한 이미지를 가진 여자 친구가 있는 게 쿨하게 보이고, 또 페미니스트들이 '통계적으로 항문성교를 더 선호하기 때문' 이라고 떠벌립니다. 

하지만 매디슨은 이젠 사회의 요구에 맞게 가정을 이루어 '좋은 여자' 로 지내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한다고 카산드라에게 얘기하죠. 

그는 가정이 페미니스트의 자리가 아니며, 정숙한 곳임을,  하여 그 정숙의 의무를 저버린 이들의 문란을 애써 비난합니다.

이후, 불안에 떨며 카산드라를 다시 찾아온 매디슨은 니나가 성폭행을 당했던 순간을 찍은 결정적인 영상 테이프를 건네면서도... 

성폭행의 묵인이 자기 책임이 아니며, 자기가 룰을 만든 것도 아니라고 변명하죠.

뜻밖에도... 카산드라는 그 비디오 영상을 통해 남자친구인 소아과 의사 라이언(보 버넘 분)이 현장에 함께 있었음을 목도하고 경악하며, 또 분노합니다.

하지만 라이언은 비겁하게도 옛날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발뺌하죠. 

카산드라가 니나 성폭행 사건을 상기시키자... 성폭행 가해자든 성폭행 방관자든,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들은 책임 주체가 아닌, '미성숙한 아이' 였다"고 강변하고 있는 겁니다. 

학장 워커(몰리 섀넌 분)도, 카산드라와 니나의 친구였던 매디슨도, 또 술에 취한 척한 카산드라에게 약을 먹이고 섹스를 시도하려 했던 닐도, 그리고 니나의 강간범 먼로도 모두... 

술에 취해 주체가 상실되면 성폭행을 할 수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정당화하려 든 것이죠.

매디슨은 니나가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고 술에 취해 낯선 이를 스스로 끌어들인 것이며, 학장 워커 또한 사람들은 술이 그들 스스로를 다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더욱이 주범 먼로(크리스 로웰 분)는 청춘 시절 '파티'였을 뿐이라며, 자신의 성폭행을 파티 탓으로 돌리죠.

카산드라는 먼로가 비키니 모델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큰 복수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카산드라는 끝내 실종되고... 찾아온 형사들에게 그의 아버지는 딸이 이렇게 사라질 아이가 아니라는 아내의 말을 부정하죠.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은 성폭행 친화적 구조가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임을 카산드라와 학장 워커의 대화를 통해 표출합니다. 

둘은 같은 책상을 놓고 마주하지만... 카메라의 앵글은 카산드라가 학장 워커를 약간 올려보는 듯 한 각도로, 반대로 워커는 카산드라를 약간 내려보는 듯한 앵글로 잡아내죠. 

더구나 학장의 뒤로는 권위적인 남성의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학장은 촉망받는 젊은 여성이었던 니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촉망받는 젊은 남성 먼로는 준수하고 총명한 청년으로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페넬 감독은 그렇게 똑같이 촉망받는 청년임에도, 여성 주체 니나는 거짓 소동을 벌이는 습관적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며....

반면, 남성 주체 먼로는 특별한 조사도 없이 무죄 추정의 특혜를 받는 전도유망한 똑똑한 인물로 그려내죠. 

사회 구성원을 생물학적, 교육적으로 재생산하는 가정과 학교를 포함한 사회 시스템은 남녀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로 성폭행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프라미싱 영 우먼>은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산드라는 "술에 취하면 스스로 자신을 성폭행에 노출하는 것" 이라는 매디슨을 술에 취하게 해 낯선 남자와 함께 호텔 방에 몰아 놓죠. 

또한 학장 워커에게는 딸을 납치해 술과 함께 남자들이 있는 호텔 방에 집어넣었다고 비웃으며, 그를 광란의 절망에 빠뜨립니다.

하여, 그들의 무책임하고도 뻔뻔한 담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고, 성폭행 친화적인 구조에 동조하는 것 또한 얼마나 위험한 것임을 올곧게 상기시키죠.

페넬은 영화 속에서 망각하는 주체는 결코 용서하지 않지만, 기억하고 깨어있는 주체에겐 용서의 손을 내밉니다. 

카산드라는 니나를 협박해 성폭행 고소를 취하하게 만든, 먼로의 변호사 조르단(알프레드
몰리나 분)의 집을 찾아가죠. 

문을 연 조르단을 향해 카산드라는 "당신의 심판의 날" 이라고 말하자, 조르단은 체념한 듯 "기다리고 있었다" 며 카산드라를 집 안으로 들입니다. 

카산드라는 지금까지 복수를 가했던 상대들과 달리, 자신의 친구 니나를 솔직하게 기억하는 조르단에게 놀라죠. 

조르단은 매일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고,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며 카산드라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결국, 카산드라는 그리스도가 죄인의 죄를 사하는 것처럼 조르단의 등에 손을 얹고 용서하기에 이르죠. 

영화는 일상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카산드라 머리 뒤의 아우라를 비추며... 신과, 피해자 및 생존자의 영역인, '용서'를 베푸는 카산드라에게 그들 모두가 깃들어 있음을 암유합니다. 

참회하는 조르단을 받아들이고,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신호를 기다리다 교차로에서 깜박 혼곤하게 잠이 든 카산드라...

그런 그녀에게 추악한 막말과 쌍욕을 퍼붓는 한 남성 운전자의 차창을 카산드라는 스틸파이프로 가차 없이 깨부숴 버리죠.

분노어린 정의의 철퇴를 내려친 셈으로... 이후 카메라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그녀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품으며,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속 
동경(憧憬)의 유도동기 선율이 짧고도 강렬히 울려 퍼지게 합니다.

혼자 살아남아서 죄송하다며 한없이 고통스러워하는 카산드라에게 니나의 엄마는 이젠 그만 잊으라고 다독거리죠.

그럼에도, 카산드라는 성폭행을 방관했으면서도 자신은 기억도 나지 않고 아무 짓도 안 했다며 용서를 구걸하는 라이언에게는 단호하게 "노(No)"를 외치며 돌아섭니다.

처단을 앞두고 "강간의 혐의를 받는 게 남자에겐 최악의 악몽이야" 라며 몸부림치는 먼로를 향해 카산드라는 냉소적으로 일갈하죠. 

"그럼 여자에겐 최악의 악몽은 뭘까? 의사가 되는 게 평생 꿈이었어. 이제 (내 방식대로의 집도를 통해) 그 꿈을 다시 이뤄볼까 생각 중야..."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의 엔딩은 짜릿하고도 통렬한 복수극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너무 뻔 한 해피엔딩의 복수극에 질린 이들에게는 나름의 의미를 가진 결말로 울려옵니다.

주연인 캐리 멀리건이 보이지 않는 신이 거의 없을 만큼, <프라미싱 영 우먼>은 매우 직설적인 작품이죠. 

딱히 다른 길로 새지 않는 영화는 가슴 깊이 사무친 한을 풀어내려는 한 여성의 처절한 복수극을 집중적으로 비춰냅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이 관객을 사로잡는 방법은 다양하죠. 

영화 장르의 차원에서 복수자가 복수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혹은 반전을 선사할지... 그 여부는 예측을 적중하기도 하고 빗겨나가기도 하면서 자못 상당한 긴장감을 계속해서 안겨줍니다. 

'영화 속 카산드라' 는 '신화 속 카산드라' 가 걸어간 길의 뒤를 따르되, 답습하지는 않죠. 

영화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가 창창했던 여성(promising young woman)' 의 목소리가 묵살 당했던 현실을 날카롭게 후벼 팜과 동시에 이제는 옛날과 다르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따로 또 같이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카산드라의 복수극은 단지 한 여성의 복수를 넘어서 오랜 기간 쌓여온 수많은 여성들의 한이 한 데 담긴 일격처럼 느껴지죠.

더 나아가 <프라미싱 영 우먼>은 여성이라는 젠더의 정체성 밖에서 살아 있는 고정관념도 파괴합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스러움' 만을 강요하지 않는 연출을 선보이며, 메시지의 진정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게 하죠. 

아울러, 니나가 성폭행당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장면의 잔혹함을 충분히 암시하며, 영화의 윤리적 테두리 안에서 적정한 가이드라인을 지켜냅니다. 

초반부의 미스터리와 중반부의 로맨스 등 여러 장르를 포괄하고 있음에도, <프라미싱 영 우먼>은 전체적으론 복수 스릴러의 외양을 띕니다만... 

과거 사건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주인공이 사적으로 실행한 복수의 디테일과 결말은 일면 논쟁적이죠. 

그의 칼날은 남성과 여성, 중년과 청소년을 가리지 않으며, 협박과 속임수 까지 동반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피해자의 위치에서 이뤄진 예측에 따른 대응임을 생각하면 매우 현실적이고도 냉정한 각본이라는 인상을 주죠. 

하여, 평생에 걸쳐 자신의 모든 예언이 무시당한 '신화 속 주인공 카산드라' 처럼...

'영화 속 주인공 카산드라'는 니나가 성폭행을 당한 순간부터 자신들의 말이 철저히 무시되고 왜곡된 채, 사실이 아닌 주장에 머무르는 삶을 산 것으로 그려집니다. 

실제로 영화는 복수의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그저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무작위로 분풀이를 하는 캐시를 비추는 오프닝을 통해 복수의 결과를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기죠.

대신, 몸을 만지지 말고 스커트를 내리지 말라는 캐시의 말을 남자들이 무시하는 것이나... 알고 보니 술에 취하지 않은 캐시의 응징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남성들의 모습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며 그녀가 견뎌야만 했던 삶의 어둠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카산드라가 처음으로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며 소통을 하는 라이언과 참된 사랑을 키워 나갔지만, 급기야 그에게 특히 실망하고 분노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게, 미국 주류의 밀레니엄 시대를 통과해 온 <프라미싱 영 우먼>의 표면에서 묘사되는 문화적 코드는 일견 분명합니다. 

예술은 저속하고 유치한 대중문화의 패러디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열에 올리지만, 사회는 만취한 여성을 결코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죠. 

이 예측불가의 복수극은 바로 그 냉소와 절망의 땅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흐름을 깨는 멜로드라마적 전개나 화려한 뮤직비디오 적 몽타쥬를 적극 삽입함으로써 초현실성의 양식을 그로테스크하게 펼쳐내고 있죠.

영화는 팝 컬처가 안기는 저속한 카타르시스를 풍자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여성이 처한 폭력과 결탁하고 있는지, 보다 선명한 메시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카산드라가 마지막 결정적 심판을 내리러 나서는 장면에서, 서늘한 안단테의 단조로 편곡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대표곡 'Toxin' 이 흘러나오죠. 

어느 산중, 먼로의 총각파티가 이뤄질 저택을 향해 유유히 걸어가는 간호사 복장의 캐리 멀리건 뒷모습에...

오케스트레이션 변주의 'Toxin' 이 삽입된 시퀀스는 히치콕의 <싸이코>속 명장면을 소환한 데 이어 2021년형의 반전까지 꾀합니다.

- 'Toxic' : 앤소니 윌리스
https://youtu.be/_R5s5h_MTCQ

: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
http://naver.me/xrP9gj8P

에메랄드 페넬 감독은 여전히 논쟁적인 ‘미투 시대’ 의 게스트들을 태우고 한껏 질주하는 데 성공했죠. 

작품성과 상업성, 배우의 연기력과 논란 까지 골고루 끌어안은 <프라미싱 영 우먼>은 동시대의 센세이셔널함을 넘어 강간 복수극의 한 정점으로 분명히 기억될 영화로 자리합니다.

신화 속 주인공 '카산드라' 라는 이름에 걸맞은 생명력을 불어넣는 환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캐리 멀리건의 눈물과 미소...

거기에는 과거의 카산드라와 현재의 카산드라가 공유한 응어리는 물론, 미래의 카산드라가 살아갈 삶이 보다 밝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희망과 기대가 응축되어 있죠.

화면 속 주요 시퀀스별로 의미 있게 흐르는 'Boyz', '2 become 1' 와 'It's raining men', Stars are blind, 그리고 'Angel of the morning' 의 노랫말들은 그토록 복잡 미묘한 카산드라의 감정선을 무연스레 따라갑니다.

- 'Boys' Droeloe Remix : 찰리 XCX
https://youtu.be/eH6WLsp7j7k

- '2 Become 1' : 스파이스 걸스
https://youtu.be/FA5jsa1lR9c

- 'It's raining men' : 데스바이로미
 https://youtu.be/_wztWP0P4IU

- 'Stars are blind' : 패리스 힐튼
https://youtu.be/6Mj776YiPCU

- 'Angel of the morning' : 쥬스 뉴턴
https://youtu.be/OGbRQyO0aUE

이처럼 인물이 '피해자다움' 이라는 허상에 반격하며 움직일 때마다 팝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파스텔 톤과 생생한 컬러의 경계를 오가며 그 중의적인 내면을 감지하게 한 감각적인 연출은 단연 주목할 지점이 아닐 수 없죠.

1.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트레일러
- https://youtu.be/zpS8M4dlV_M

- https://youtu.be/7i5kiFDunk8

- https://tv.kakao.com/v/415979721

2-1.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Prelude & Liebestod)' 
- 앙드레 오로조코 에스트라다 지휘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
https://youtu.be/5NvUyCdKAxM

이 곡은 제1막의 전주곡과 제3막 제3장의 마지막 아리아 '사랑의 죽음' 을 연결한 곡입니다.

먼저 '전주곡' 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서로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관습의 장벽에 막혀 맺어질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은유하고 있죠.

동경을 담은 사랑의 기쁨과 관능미를 신비적 분위기로 담아낸 이 전주곡에는, 첫머리의 '동경의 동기' 에 이어 '사랑의 동기'가 나타나 차츰 고조되어 가지만... 그 정점에서 '운명의 동기' 에 의해 밀려나 차츰 가라앉습니다. 사랑의 완성이 유보된 것이죠.

이어지는 '사랑의 죽음'(Liebestod)' 은 제3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주검을 앞에 두고 홀로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이것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피날레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인간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유의지로 목숨을 끊고 밤의 세계를 향해 비상하는 거룩하고 신비로운 의식인 것이죠.

그 클라이맥스의 찬란한 화음에서 극중 내내 유보되어온 두 연인의 사랑은 마침내 처연한 숭고함으로 완성됩니다.

2-2. 제3막 아리아 '사랑의 죽음(Liebestod)'
- 소프라노 비르깃 닐슨
https://m.facebook.com/inmirklingteinlied/videos/1385301731703042/

"부드럽고 조용하게 그가 미소 지으며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
여러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나요?

점점 밝아지면서 광채를 내며
별빛에 싸여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이
여러분들에겐 보이지 않나요?

그의 가슴은 지혜와 고귀함으로 가득하고
그의 입술엔 향기와 포근한 입김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오가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나요?
              
파도치는 물결 속에, 바다의 소리 속에
세상이 숨 쉬는 그 맥박 속에 빠져들어
나를 잊어버리려 합니다.
오, 다시없는 기쁨이이여"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칼럼을 쓰며 강의도 하고 있고, 조만간 책으로 출판 예정이라고... 현재 영등포문화재단 혁신경영관으로 재직 중이다.

 - 李 忠 植 -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저작권자 © 축제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