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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토기에 새겨진 ‘해시태그(#)’ 문양의 정체는?만주와 한반도서 180여건 발견…'광개토왕 상징'에 '행운의 상징' 새 반론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구려 토기에 새겨진 ‘해시태그(#)’ 문양의 정체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0~11일 열린 한국목간학회 주최 3회 한·중·일 목간연구 국제학술대회에서 고구려사 전공인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는 이 문양이 행운과 대박, 복의 상징이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고구려 유물들을 둘러싼 주요 수수께끼로 꼽히는 #기호가 1500여년 전의 고구려에서는 네잎 클로버나 숫자 7과 같은 의미였다는 말이다.

여 교수는 ‘고구려유적의 ‘#’자 출토현황과 그 의미’란 논고를 통해 ‘#’문양은 고구려인이 창안한 행운과 대박, 복을 비는 ‘대길’(大吉)’의 뜻이라며, 이 기호가 백제와 신라는 물론 왜국까지 전파돼 활용됐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기호(혹은 글자, 문양)는 지난 100여년간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흩어진 3~7세기 고구려 유적의 토기와 기와에서 180건 이상 발견됐다.

하지만, 여태껏 실체적 의미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학계에서는 문자설, 부호설 등이 나왔고 작고한 인기작가 최인호도 1990년대 펴낸 역사소설 ‘왕도의 비밀’에서 광개토대왕의 상징 문장이란 주장까지 내놓았지만 정설은 없다.

이번에 나온 여 교수의 주장은 #기호의 계통을 총체적으로 살펴본 연구성과라는 데 의미가 있다. 

여 교수는 1946년 경주 호우총에서 발굴된 광개토왕 추모의식이 적힌 고구려제 문자 그릇을 비롯해 만주와 남북한에서 모두 182건에 이르는 토기, 석각, 와당, 기와의 #표시를 모두 분류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고구려인들이 ‘대길’(大吉)의 ‘길’(吉)자를 변형해 ‘#’을 행운을 상징하는 기호 혹은 글자로 창안했다는 것을 새로 규명했다고 논고에서 밝혔다.

논고를 보면, 고구려 유적 출토 ‘#’자는 국내성 지역 132건(최대 229건), 남한지역 50건(최대 56건) 등 182건에 이른다. 국내성 지역 ‘#’자는 석각, 와당, 기와 등 다기한 유물에 새겨졌으나 남한은 토기만 확인된다. 형태도 국내성 사례는 대부분 마름모꼴인데 비해 남한 지역의 유물들 문양은 직사각형이 더 많다.

‘#’자 의미에 대한 견해는 문자설과 부호설로 나누어져 있다. 백제 풍납토성의 경당지구 유적에서 ‘대부’(大夫)’와 ‘#’자가 각각 새겨진 목 짧은 토기가 출토되고, 서울 아차산 고구려 시루봉보루에서 ‘대부#’(大夫#) 명문이 출토된 이후 문자설이 좀 더 주목을 받아왔다.

‘#’자를 새긴 순서를 살펴보면 우물이란 뜻을 지닌 한자 ‘井(정)’자의 필획과 상당히 다르다. 가로획이나 세로획을 엇갈리게 새긴 경우도 많다. 5세기 고구려군이 최전방 진지로 주둔했던 시루봉보루 출토 큰 독(대옹)의 ‘대부#’(大夫#) 명문에서 ‘#’자는 ‘대부’(大夫)와 반대 방향에서 거꾸로 새겼다. ‘#’자를 ‘우물 정(井)’자로 인지하고 새겼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곧 ‘부’(夫)자와 ‘#’자가 본래 한 글자였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에 여 교수는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에 있는 고구려 도읍 국내성터 근교의 4세기 중엽~후반의 왕릉급 무덤인 천추총의 계단석과 구름무늬(권운문) 와당 출토품을 주목한다. 이 무덤의 내부 계단석과 와당의 중심 부분에서 ‘#’자 기호가 최초로 확인되며, 이 두 유물보다도 시기가 앞서는 국내성터 출토 권운문와당의 중심 부분에는 ‘대길’(大吉)이 새겨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역시 시기가 앞서는 4세기 초 미천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지안 서대묘 계단석에도 ‘大吉’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여 교수는 ‘#’기호는 고구려인들이 애초엔 국내성 부근의 왕릉 유적 유물에 새겨진 ‘대길’(大吉)의 ‘길’(吉)자를 변형, 축약하는 여러 단계를 거쳐 창안한 상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힌다.

논고를 보면, 고구려인들이 ‘#’자를 처음 창안한 4세기 중반에는 주로 왕릉급 무덤의 조영이나 제사와 관련해 기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는 일반적인 길상구 ‘대길’(大吉)을 뜻하므로 점차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널리 수용되었고, 백제나 신라, 일본 등 주변국 토기 문양 등으로도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여 교수는 “고구려의 식자층이라면 대부분 ‘#’자가 ‘대길’(大吉)을 뜻하며, ‘길’(吉)자를 변형한 ‘(夫+井)’자에서 유래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자의 의미나 그 유래도 주변국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특히 고구려 최전방이던 서울 아차산 시루봉 보루 유적에서 병사들의 개인용품으로 보이는 ‘#’자 새김 토기류가 수십여개 무더기로 나온 건 병사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행운의 부적 기호로 ‘#’자가 널리 활용된 단적인 증거라고 짚었다.

415년 광개토왕을 기리는 청동 호우(壺杅)가 경주 고분에 묻힌 사실이나 백제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목짧은 항아리 두종 표면에 각각 ‘大夫’와 ‘#’ 명문이 새겨진 것도 신라, 백제에서 ‘#’자의 의미나 유래를 인지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한다. 길상구 ‘대길’(大吉)을 한글자인 ‘大+#’자로 변형하면서 더욱 축약해 창안한 ‘#’자가 ‘상서로움’을 표상하는 동북아 공용의 상징 부호로 쓰였다는 추론이다.

발표를 들은 김재홍 국민대 교수는 “고구려 문자문화의 수수께끼에 대해 학문적 방법론을 가지고 관련 유물들을 오랫동안 모으고 연구해 의문을 풀어보려한 점을 높이 평가할만하다”면서 “대길(大吉)에서 어떻게 정(井)자 모양으로 변했는지에 대해 중간단계의 기호 근거들을 제시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해석이 비약한다는 점이 한계로 비친다”고 했다.

양성희 기자  kotr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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