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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경주시 신라왕경 복원사업을 응원한다
백태윤 선임기자

 

코로나19로 방문객이 60% 이상 줄었던 경주의 관광산업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 9월 말까지 약 3600만 명의 관광객이 경주를 찾아 연말 추위를 감안하더라도 4500만 명은 무난히 돌파할 전망이다. 

여기서 세계 제1의 관광도시 파리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파리는 2022년도에 외국인 관광객만 4400만이 찾아왔다. 코로나 19 이전의 연간 1억 명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작년 320만에서 올해 1천만이 예상되는 한국보다는 월등히 많다. 

경주시 인구는 약 24만 명으로 200만 파리 인구의 1/8 정도이다. 반면에 도시 면적은 약 20배 정도 넓다. 파리는 그 속에 있는 건물 자체가 문화재급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외국에서 들여 온 유물도 엄청나게 많다. 굳이 파리를 경주시의 경쟁 대상으로 비교할 필요는 없다. 문화유산이 풍부한 관광도시로서 손님들의 여행 만족도를 높여주기 위해 공존하는 글로컬 도시로서의 위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경주는 공주나 부여에 비해서는 남은 유적의 양이 월등히 많다. 세계사적으로도 1천년 동안 수도로서 유지된 도시는 이라크 바그다드나 중국 장안 등 손 꼽힐 정도이다. 그나마 신라의 경주처럼 한결같이 한 왕조의 수도로 유지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경주는 한반도 귀퉁이에 자리잡은 작은 촌락같은 도시라 치부하면 오산이다. 그간의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당시 경주에는 1백만호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천년이 지난 한양 도성에도 그 정도의 민가는 없었다. 거주인구로 환산하면 5백만 명은 더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만한 도시가 많지 않아 믿기 힘든 규모다. 

당시 도시의 규모를 가늠하게 하는 황룡사 9층목탑은 90m 정도로 추정된다. 일본 법륭사 5층 목탑의 높이가 32m에 불과하니 당시 신라의 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순수비로 유명한 진흥왕 때 건축되어 몽골의 침략으로 소실될 때까지 700년 가까이 버텼던 목조탑이 이 땅의 기술로 지어졌던 것이다. 요즘 우리의 목공기술 수준은 나무로 된 거북선도 제대로 못 만든다. 목조건물은 갈라지고 뒤틀리지 않는가? 그렇게 높은 목탑이 태풍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참고로 황룡사 9층탑은 백제인들이 세웠다. 미륵사9층탑을 만들었던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100만호가 있었던 신라의 천년 수도 경주에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에게도 잠재적 위협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시대부터 조선조까지 경주에게 신라 패망 후 1천년은 해체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목이 부러진 불상 숱한 석불들이 조선 유학자들의 소행이란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경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적의 양과 질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대 경주는 물의 도시였다고 한다. 지하에 물이 많아서 어딜 파도 우물이 되니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도시 안으로 인공수로가 조성되어 배를 타고 다녔다는 학설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신라왕경복원사업으로 진행되는 발굴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놀랄 준비를 많이 하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왕경복원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철저한 학술적 고증이 필요하다. 하드웨어 복원만으로는 안된다. 불교미술의 흥왕도 절실하다. 물론 그 후손인 현대 우리의 한류문화도 접목되어야 하며 신라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백제문화의 복원사업과도 연계되어야 한다. 문화는 흘러야 한다. 산 따라 강 따라 마음이 가는대로 막힘없이. 

김근자씨

김근자(여. 49)씨는 중국 심양 출신 한족(漢族)으로 한국인 남편을 만나 1997년 귀화했다. 지금은 경주 황성동에서 중국어 학원을 운영하면서 경주에 대한 사랑과 특히 신라왕경복원에 대해 관심이 유달리 높다. 그는 경주의 과거의 영화에 비해 지금의 초라한 위상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서 각종 학술대회에도 자주 참여하며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해설기회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왕경복원을 위한 경주시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경주시민의 관심부족은 아쉽다"면서 "시는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에서 민간학술단체와도 더 많이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떻든 여러 노력이 어우러져 결국 경주의 '지붕없는 박물관'의 닉네임은 첨단 디지털기술을 만나 문화복원산업의 새로운 쟝르를 만들어 낼 지도 모른다. 경주의 성과는 전세계 숱한 문화유적들의 복원사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수도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과 문화역량이 쌓일 때까지 경주는 수천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월성과 동궁을 거쳐 첨성대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가는 배를 타고 한복으로 멋을 낸 아가씨들의 웃음소리가 피어나는 미래의 경주를 상상해 본다.

by 백태윤 선임기자@축제뉴스

백태윤 선임기자  pacific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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