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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의 인생손글씨/할미그라피-05> 완주군 소양면 방명선 할머니당신이 벙어리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벙어리인 줄 

알았습니다

 

 

완주군 소양면 방명선 할머니

 

소양면 다리목에 사는 일흔일곱살 박명선 할머니.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남편과 전주에서 몇해 전 고향인 소양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할머니는 작은 슈퍼를 한다.

 

807번 시내버스를 타고 송광사로 향하는길, 한여름 그늘을 드리우는 아름드리 거목과 작은 정거장이 있다. 색색의 꽃이 줄지어 피어있는 길 사이 작은 컨테이너가 보인다. 무심하게 놓인 ‘담배’라는 글씨가 이곳의 정체를 말해준다. 할머니의 슈퍼.

 

한 십 년 전에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고 전주서 헐 일도 없고 나이 먹어갖고 그러고 있는데 시골 친정집 쪽에 가게가 하나 있다고 하대. 그래서 심심풀이로 해볼까하곤 고향으로 내려왔어. 근데 갈수록 동네에 젊은 사람이 없네. 애기들도 없고. 긍게 그냥 어찌다 술 한 잔 사갖고, 막걸리 와서 한잔 먹는 사람 베끼 없지. 시내서 사는 것도 그렇고 여그가 친정 동네고 그래서 왔어. 공기 좋고 전주로 왔다갔다 헐 수도 있고 이렇게 널룹고 좋은게.

 

몇 년 전인가. 서울서 관광버스가 왔어. 산악회에서 버스타고 왔는가벼. 산등을 타고 내려와서는 “ 아 여기 주막있다” 그럼서 들어와. 그때가 봄인 게 열무김치를 좀 담가 놨었거든. 막걸리랑 좀 갖다 놨더니 “아이고 왜 이렇게 싸냐고” 하대 사람들이. 그때는 막걸리 한 병에 천 오백원 쯤 됐어. 그럼서 열무김치가 왜 이리 맛있냐고. 우리는 젓갈도 안 넣고 그냥 양념만 해서 담거든. 그럼서 아이고 진짜 맛있다고, 술값도 싸다고 더 주고 가더라고. 우리는 담배도 팔어. 사업자등록이 있응게 주지 안 그럼 안줘.

 

우리집 아저씨는 모래내 시장 농고(현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쪽에서 아코디언 교습소를 해. 오래 되얐어. 음악생활을 한 스물 몇 살 때부텀 했지. 서울로 어디로 다 돌아 댕기다가 전주가 고향잉게 와갖고. 군인갔다 제대해서 나 만나서 결혼해서 살았어. 그때 전주 고사동 전주백화점 옆에서 음악학원을 하다가 접고 아코디언 교습소를 했지. 지금은 모래내에서 허고. 정년한 사람들이 와서 배워.

옛날에 6.25 전인가. 시골마다 학교 못간 사람들 알려줄라고 서울서 다니는 선생이 있었어. 나도 그 선생님이랑 동생들 어깨 너머로 글씨를 배웠는데 잘 몰라갖고. 작년부터 한긁실을 다녀. 그 전부터 다닌 사람들은 몇 년씩 배웠드만. 나는 얼마 안되았어.

 

아저씨가 원래 말이 없어. 생전 말을 안혀. 그래서 내가 말하는 벙어리라고 했지. 이제는 그려려니혀. 나도 말도 안하고 살았어. 재미도 없이 살았네. 우리집 아저씨는 고등학교를 나왔거든. 배운 양반이니까 내가 만날 물어보지. 내가 산수도 안 배워서 계산을 잘 못혀. 한글학교 책에는 영어도 있고 숫자도 뺄셈 덧셋 조금씩 들어있더라고. 엊그저께도 내가 써놓고는 우리집 아저씨한테 이게 맞냐고 했더니 “잘 했네”, “이렇게 풀면 되야” 이러대. 물어보면 잘 갈쳐줘. 우리집 한글 선생님이여.

내가 우리집 아저씨에 대해 글 쓴 게 많거든. 내가 보여줬지. 보여줘도 암말도 안혀. 근데 내가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어. 나한테만 말 안허지.(웃음)

 

 

 

 

 

이상호 기자  sanghod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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